그 시대 악기로 연주하는 '고음악'..시대 숨결까지 느낀다

임석규 2021. 12. 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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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도 뿌리 내리는 '고음악 연주'

수백년 전 서양음악 당시 악기로
그 시대 작법에 충실하게 연주
'양 창자' 바이올린 현 깊은 소리
국내도 연주자·단체 늘고 매년 행사
올해 9회째를 맞는 고음악 특화 음악회 ‘한화클래식’의 주역으로 나서는 소프라노 서예리. 마르코 보르흐레버 제공

수백년 전의 서양 음악을 당시의 악기로, 그 시대 작법에 충실하게 연주한다는 게 지금 한국의 음악인들에겐 어떤 의미일까. 바로크 첼리스트 강효정은 “그동안 숱하게 들어온 질문”이라며 그때마다 했다는 답변을 들려줬다. “바로크 음악은 고악기로 연주할 때 훨씬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당시 음악은 사람들의 삶을 품고 있었다. 고악기 연주에선 그 시대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고음악’은 작곡 당시 제작 양식으로 만든 악기와 관행에 따라 연주하려는 움직임을 일컫는다. 그래서 바이올린 현도 요즘처럼 금속이 아니라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 현’을 쓴다. 활도 모양이 다르다. 음량이 작지만, 소리가 깊고 지루하지 않다. 시대 악기 연주, 원전 연주, 정격 연주, 역사주의 연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1970년대 유럽에서 시작돼 이제는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휘스타브 레온하르트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선두에 섰고 존 엘리엇 가드너, 조르디 사발, 필리프 헤레베허, 레네 야콥스 등이 뒤를 잇고 있다.

고음악의 매력에 빠져 첼로에서 옛 악기인 ‘비올라 다 감바’로 전공을 바꾼 바로크 첼리스트 강효정. 제이에스바흐 제공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김나연은 “음악의 본질에 더 다가가려는 움직임이 고음악 연주”라고 말했다. 제이에스바흐 제공

국내에서도 고음악 연주가 점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세계적인 고음악 전문 연주 단체를 초청해 고음악 특화 연례 음악회로 자리잡은 ‘한화클래식’이 올해로 9년째를 맞는다. 다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내 대표적인 고음악 연주자들이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를 꾸려 무대를 마련했다. 지난해 소프라노 임선혜에 이어 올해엔 소프라노 서예리가 함께한다. 서예리는 레네 야콥스에게 발탁됐고, 저명한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의 극찬을 받는 등 유럽의 고음악과 현대음악 무대에서 맹활약해왔다. 오는 7~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바흐의 ‘커피 칸타타’와 ‘바이올린과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 페르골레시의 히트곡 ‘서 계신 성모’(Stabat Mater) 등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바로크 음악을 들려준다. 첼로에서 옛 악기 ‘비올라 다 감바’로 전공을 바꾼 강효정을 비롯해 김나연(바로크 바이올린), 신용천(바로크 오보에) 등 국내 대표적인 고음악 연주인들이 출연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베일링크 음악원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요하네스 레이르타우버르가 악장을 맡는다. 김나연은 “음악의 본질에 더 다가가려는 움직임이 고음악 연주”라며 “연주자에게 허용되는 자율성이 커 역량을 펼칠 여지도 더 많다”고 했다.

이번 한화클래식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에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베일링크 음악원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요하네스 레이르타우버르가 악장을 맡는다. 제이에스바흐 제공
바로크 오보이스트 신용천은 금속제 현대 오보에와 재질과 모양이 크게 다른 옛 오보에를 연주한다. 제이에스바흐 제공

2010년대 이후 국내에서도 고음악 연주자와 연주 단체가 차츰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연주 단체만 꼽아도 ‘바흐 콜레기움 서울’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알테무지크 서울’ ‘바흐 솔리스텐 서울’ 등 10여곳에 이른다. 지난달 29일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이 새롭게 추진한 서울바흐축제가 열렸다. 춘천에서는 지난 9월 어김없이 국제고음악제가 열렸는데, 벌써 24회째다. 대전에서도 지난달 6일부터 23일까지 7회째 바로크음악제를 열었다. 음악학자인 이가영 성신여대 작곡과 교수는 “고음악 연주는 서구 클래식 문화에 새로운 물꼬를 트면서 음악에 대한 수많은 성찰과 질문을 이끌어냈다”며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뚫고 한국에서 고음악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건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오는 7~8일 열리는 한화클래식 포스터. 제이에스바흐 제공

국외 수준급 고음악 연주 단체의 음악을 들을 기회도 많아졌다. 여기엔 2013년 첫발을 내디딘 한화클래식이 기여한 바가 크다. 바흐 음악의 최고 권위자 헬무트 릴링(2013년)을 시작으로 18세기 오케스트라, 마르크 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 윌리엄 크리스티와 레자르 플로리상, 카운트테너 안드레아스 숄과 잉글리시 콘서트, 조르디 사발 등 그야말로 유럽 고음악계의 최고 거장들이 한화클래식 무대에 차례로 올랐다. 이 기획을 꾸려온 기획사 ‘제이에스바흐’의 이지영 실장은 “클래식 애호가, 마니아들이 꼭 만나보고 싶었던 연주자들 가운데 기회가 닿지 않아 내한하지 못한 연주 단체를 중심으로 섭외한다”며 “한국 연주자나 작곡가들이 한 무대에서 교류할 수 있도록 조율해왔다”고 말했다.

기업이 협찬하고 후원하는 콘서트 대부분이 기존에 기획된 공연을 그대로 들여오는 방식인 데 비해 레퍼토리부터 프로그램 구성까지 국내 기획사가 관여해왔다는 점도 눈에 띈다. 고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선 다음 초청 주자로 영국의 스타급 지휘자 존 엘리엇 가드너와 그가 이끄는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트와 몬테베르디합창단 내한 공연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한화클래식도 여러 경로를 통해 가드너 쪽을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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