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갑질에 멀쩡한 운송회사, 사실상 공중분해

곽래건 기자 2021. 12. 3.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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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화물연대, 대기업 압박해 계약해지 시켜
"비노조원과 거래했다고 갑질.. '연대' 간판 단 사실상 폭력 집단"
2일 부산 남구에 있는 물류업체 거마로직스 사무실에서 이 회사 정재민 대표가 집기를 정리하고 있다. 그는 “노조원이 아닌 기사에게 일감을 주지 말라는 화물연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가 회사가 하루아침에 날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부산 소재 물류업체 ‘거마로직스’ 정재민(42) 대표는 지난 10월 29일 한국타이어로부터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올 12월 31일부로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회사는 20여 년 동안 한국타이어가 만든 수출용 제품을 공장에서 부산신항 등으로 실어 날랐다. 한국타이어는 이 회사 매출 95%를 차지한다. 한국타이어 계약 해지 선언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정 대표의 악몽은 민주노총 화물연대 요구를 거절한 것에서 시작됐다. 화물연대는 지난 7월 거마로직스를 상대로 컨테이너 트럭기사 A씨에게 일감을 주지 말라고 했다. A씨가 노조원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정 대표는 나중에 A씨가 부당 행위라는 등 문제를 삼을까 봐 화물연대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화물연대는 ‘거마로직스와 계약을 해지하라’고 화주(貨主)인 한국타이어를 압박했다. 한국타이어가 화물연대에 굴복하면서 정 대표에게 계약 해지라는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정 대표는 “20년 가까이 일군 회사가 화물연대 횡포로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됐다”고 말했다. 한국타이어가 손을 떼자 다른 거마로직스 직원 10여 명도 퇴직금을 받고 회사를 떠났다. 화물연대 횡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거마로직스 기사 30명 중 화물연대 노조원 17명에 대해서는 다른 물류회사 일을 할 수 있게 했지만, 비노조원 13명에게는 “일자리를 주지 말라”면서 물류회사들이 쓰는 부산신항 임시 야적장을 차로 봉쇄했다. 정 대표는 “끝장을 볼 때까지 괴롭히겠다는 거 아니겠느냐”고 했다.

2일 사무실에 앉아 있는 정재민 대표 뒷편으로 차량 현황을 적어놓은 칠판이 보인다. 책상은 이미 거의 다 비워졌고, 사무용 집기도 대부분 치워져 있다. /김동환 기자

2일 부산항 터미널 근처 거마로직스 건물 사무실 책상은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구석에 있는 트럭 번호와 기사 이름, 연락처 등이 빼곡하게 적힌 칠판이 아니었다면 얼마 전까지 이곳이 물류 회사 사무실로 쓰였다는 것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정 대표는 “계약 기간이 남았지만 회사는 이미 사실상 문을 닫은 상태”라며 “직원들이 한꺼번에 그만두면서 급여와 퇴직금으로만 수억원이 한꺼번에 나갔다”고 했다. 그는 “사업 자금 끌어다 쓰기 위해 담보로 잡았던 집도 날리게 됐고, 세 딸 등 가족과 집에서 쫓겨날 처지라 밤에 잠도 안 온다”고 했다.

정 대표가 이 회사에서 일을 한 것은 약 20년 전이다. 장인이 차린 회사였다. 그가 장인을 대신해 회사를 운영한 것은 15년 정도다.

그는 ‘왜 화물연대 요구대로 A씨와 계약을 끊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올해 초 노조원 B씨가 계속 회사 직원들과 다퉈 계약을 해지했는데, 화물연대는 부당 해고라며 한국타이어 앞에서 한 달 반 동안 집회 열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결국 정 대표는 B씨와 다시 계약을 맺어야 했고, 그가 일을 못 한 한 달 반 치 대금도 물어줘야 했다. 정 대표는 “노조 압박으로 그런 일이 있었는데 A씨도 비슷한 상황으로 가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었다”며 “화물연대에 ‘A씨 건은 화물연대 안에서 해결하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거마로직스와 화물연대 사이는 좋지 않았다. 정 대표는 “한국타이어 수출 물량 취급하는 회사 다섯 곳 중 나머지는 기사 전원이 (화물연대) 노조원인데, 우리 회사만 그 비율이 절반을 조금 넘겼다”며 “노조원이 적은 우리가 (화물연대엔) 눈엣가시였던 것 같다”고 했다. 정씨는 “노조에 가입하고 안 하고는 기사 마음인데 노조에선 계속 나보고 ‘기사들을 (화물연대에 가입하지 못하게) 회유했다’고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화물연대는 매번 회사를 건너뛰고 (원청인) 한국타이어를 압박했다”며 “한국타이어에 가서 실력 행사만 하면 모든 것이 자기들 마음대로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비노조원 기사에게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고 압박했고, 회사 배차나 계약 문제에도 개입했다”고 했다. 직원들 사이에서 ‘이렇게 노조 시키는 대로 할 거면 월급을 회사가 아니라 노조에서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정 대표는 “본인들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것 외에 회사 문을 닫을 정도로 잘못한 게 도대체 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연대’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자기 이익만을 챙기고 힘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상 폭력 집단 아니냐”고 했다. 그는 “노조는 회사가 문 닫게 되자 대금을 못 받을 것 같다며 가압류 등을 걸었고, 내가 고의 부도를 내고 사기를 쳤다며 경찰에 고발까지 했다”며 “회사를 망하게 한 건 결국 그들인데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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