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진심·대중의 사랑.. 상업과 예술의 이분법에 반기 든 두 작가
귀엽고 친숙해서 사랑받던 동구리
거칠고 삐딱한 드로잉 거쳐서 탄생
20여년간 드러낸 적 없던 민낯들
실상은 작가의 진짜 얼굴처럼 다가와
'변방의 작가' 변웅필.. 청담동 '썸원'전
일반인은 알 수 없는 난해함
예술이란 이름으로 모른척 못해
상고서 대학진학, 유학까지 삶의 궤적
대중의 사랑 선택한 이유 드러내
◆‘동구리 20년’ 권기수의 또 다른 진심
‘너는 비웃었지만 나는 잘하고 있어’, ‘니가 원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아니’,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 글을 쓰고 싶었어 춤을 추고 싶었어 그림을 그리고 있어’.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새로 문을 연 갤러리 ‘스페이스 미음’의 ‘동구리 20년 권기수 개인전’ 현장. 벽면을 가득 채운 글귀들은 가벼운 말장난 같아 재미나기도, 끓어오르는 분노와 답답함, 다짐 등을 담은 로커의 노래 같기도 하다.
검은 먹물로는 간단한 사람을 그리고, 주먹으로 이 문구들이 쓰였다. 주먹은 주황색 먹으로 주로 동양화에서 낙관을 찍을 때 쓰이는 것이다. 부적 같은 주술적 용도로도 쓰인다. 주먹의 힘일까, 유독 쨍하게 눈에 들어오는 문구에 담긴 다짐이나 혼잣말들이 나를 지키줄 부적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원래 그가 그리던 동구리 작품은 전혀 달랐다. 동구리는 그가 지난 20년간 사람을 동그라미와 선으로 단순화해 기호화한 것이다. 익명의 대중을 상징한 것인데, 무지개를 건너기도, 대나무에 매달리기도 하는 귀여운 동구리 모습이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다. 동양사상 배경을 깔고, 여러 풍경 속에서 동구리가 노니는 모습은 전통 산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소개돼 왔다.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해 세밀한 스케치를 뜨고, 다채로운 물감으로 치밀하게 완성한 회화가 그의 대표작들이었다.
동구리를 그린 지 20년. 무게감이 남다른 전시에 드로잉을 내놓게 된 계기와 소회를 물었다. 그의 답은 지난 20년의 인생 고민이 녹아있는 ‘권기수표 철학’이었다.
“소소한 선택들이 모두 삐딱이 선택이었다. 지난 20년간 얼핏 보면 동구리로 문화상품을 만드는 등 상업적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미술시장의 주류로 산 듯하나, 실은 철저한 비주류였다. 상품 개발을 할 때도 욕을 많이 먹었다. 정교수 제안을 거절한 적도 있는데, 교수를 하기 싫었던 게 아니라, 스케줄상 어려워 거절했다. 바보 같은 선택이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작품에 에너지를 쓸 수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선택, 이성적이지 않은 선택을 해왔지만, 내 안에 목마름을 따라간 게 지나고 나면 더 좋은 보상으로 내게 왔다. 이번에도 미술관과 전시를 할 수도 있었지만 신생 갤러리를 택했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자는 계획이 희미한 미술관보다는, 보여주고자 하는 게 확실한 곳의 제안이 끌렸다.” 그의 표정이 유독 신나 보였다. 1월20일까지.
◆‘교수가 아닌, 대중의 사랑을 받겠다’ 변웅필
상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나간 미술대회가 운명을 바꿨다. 아무도 대학 진학을 생각하지 않던 1980년대 상고였다. 서울시내 청소년들이 쏟아져 나온 미술대회에서 덜컥 상을 받아버린 상고 1학년생에게 교감 선생님은 “넌 앞으로 그림만 그려라”며 특혜 아닌 특혜를 준다. 미술이라면 최고라는 대학에 가겠다며 홍익대를 지원하지만, 당시 실기시험장에서 암암리에 부정이 팽배했던 물정을 모르던 그는, 실기시험장에서 석고상 측면만 보이는 말석을 배정받은 것에 항의하다 쫓겨나고 만다.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 생긴 돈 10만원으로 홍대 인근 실기학원수강권을 끊어 다닌 끝에 1989년 동국대 미대에 입학에 성공한다. 대학 시절에는 미대 학생회장을 맡아 학생운동 투쟁 전선에 섰다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학교가 위치한 서울 중구 주민들을 위한 미술교실을 열어 대중과 함께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미대에 갔건만, 수업이 탐탁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입시미술 강사를 하며 테크닉은 지겹도록 단련한 그는 교수가 원하는 그림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좀더 자유로운 학교를 원했다. 1995년 가을, 유학을 알아보다 수업료가 공짜라는 독일로 떠난다. 그렇게 나름 선구적으로 독일 유학을 개척한 당사자가 됐다. 독일 뮌스터 미술대학 출신 변웅필 작가 얘기다.
그의 미술 인생 이야기는 아카데미즘 반대편, 일상 속 미술이 내내 초점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같은 걸 보면 난해함이 팽배하다. 우리나라가 독일보다 더 난해하다. 일반인과 괴리됐다.” 그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지방대나 소위 삼류대를 나오면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기회가 없다. 학생들의 삶과 교수님들 삶 사이에 괴리는 너무 크고, 학생들은 그걸 좇다 다리가 찢어진다. 작품을 팔아야 작업을 하는데, 학교에선 재료학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 대충 만든 캔버스는 나무가 뒤틀리고 천이 찢어진다. 10년 후 그림이 망가지면, 그 소장가는 다시는 그림을 사지 않는다.” 그가 꼬집는 말이 매서웠다. “나는 그들이 추구하는 것과 반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대중에게 오래도록 사랑받고 편안한 그림”이었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작품들은 추상화 같은 초상화, 초상화 같은 추상화다. 인물인 것은 알겠으나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이 단순하다. 다만 그림당 하나씩 표정이 읽힌다. 편안함, 싱그러움, 기쁨, 안도감 등이다. 작가 내면의 일기, 진솔한 고백으로 읽힌다. 작품에서 전해지는 위안이 오래도록 변치 않도록 그는 캔버스 나무 틀, 천부터 하나하나 직접 구해 제작한다. 30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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