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군화 빼고 '유사 군복 처벌' [판결 돋보기]
[경향신문]
팔려던 남성 기소유예
헌재 “오인할 정도 아냐”
전원일치로 ‘취소’ 결정
A씨는 2018년 4월 인터넷 사이트에 사제 전투화를 매물로 올렸다. 예비군 훈련 때 쓰려고 사놓은 걸 2만원에 다시 팔려고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A씨에게 연락을 한 건 구매자가 아니라 수사기관이었다. ‘군복 및 군용장구의 단속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A씨는 그해 6월 검찰에 의해 ‘유사 군복을 판매할 목적으로 소지한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는 혐의는 인정하지만 기소하지 않는 처분이다. 죄는 있지만 여러 사정을 참작해 처벌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A씨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이 자신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사제 전투화를 팔려고 한 게 왜 죄가 되느냐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A씨가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을 재판관 전원 일치로 인용했다고 2일 밝혔다.
재판관들은 유사 군복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전투화의 경우 보다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봤다. 의복의 원단이나 특유의 무늬만으로 군복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큰 전투복과 달리 전투화의 경우 시중에 유사한 디자인의 신발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군복단속법 제2조 제3호에 따르면 유사 군복은 “군복과 형태·색상 및 구조 등이 유사하여 외관상으로는 식별이 극히 곤란한 물품으로서 국방부령이 정하는 것”이다. 국방부령인 군인복제령은 전투화의 모양을 “신목이 길고 좌우는 돌출된 원형 구멍이나 고리로 구성함”이라고, 색상 및 재질은 “육군·해군·공군: 흑색 가죽 및 직물, 해병대: 회그린색 육면 가죽 및 직물”이라고 각각 규정한다.
재판관들은 이 규정이 너무 포괄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A씨가 팔려고 한 전투화를 더 세밀히 살폈다. 재판관들은 “현재 군에서 보급되는 전투화와 외관상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군용 및 국방부 표시가 없는 점, 앞코 덧댐 길이가 비교적 짧은 점, 지퍼 흘러내림 방지 부분의 모양, 발등 좌우로 끈 구멍이 시작되는 부분 측면의 가죽과 직물의 접합 부분의 모양이 모두 상이한 점” 등도 유사 군복으로 볼 수 없다는 근거로 들었다.
헌재는 “유사 군복의 소지·판매를 금지한 군복단속법 조항의 입법 취지가 군인 아닌 자의 군 작전 방해 등으로 인한 국방력 약화 방지에 있음을 고려할 때, 유사 군복은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군인이 착용하는 군복단속법상 군복이라고 오인할 정도로 형태·색상·구조 등이 극히 비슷한 물품을 의미한다”며 “군복과 비교하였을 때 단순히 유사한 정도보다 더 높은 정도로 유사한 물품만 해당한다”고 밝혔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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