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단팥, 엄마는 꿀슈크림, 딸은 로제호빵.. 온가족 '好·好·好~' [먹어주는 얼굴]

윤경현 2021. 12. 2. 18:4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발효미종 정통단팥' 정든 추억의 맛에 푹
'꿀슈크림''로제' 단맛에 매운맛은 꿀조합
'꿀고구마' 달디단 맛은 '듬뿍피자'로 잡고
"매워서 입이 호강" '배홍동' 한 입에 엄지척

“뜨거워서 호호~ 맛이 좋아 호호~.”4050세대라면 누구나 어릴 적에 한 번쯤 들어봤을 겨울철 대표간식 ‘삼립호빵’의 광고 문구다. 간식거리가 귀하던 그 시절, 겨울이면 동네 구멍가게 앞에 모습을 드러내던 빨간색 원형 찜통과 그 안에서 뽀얀 김을 내뿜던 호빵에 대한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호빵은 ‘뜨거워서 입으로 호호 불어 먹는 빵’이라는 뜻이다. 국내 대표 종합식품기업 SPC삼립(옛 삼립식품)이 겨울철 매출을 늘리기 위해 만들었다. 1971년 호빵이 처음 나왔을 때 소비자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추위가 시작되는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 한정된 기간 판매했음에도 SPC삼립 연간 매출의 15%를 차지했을 정도다.

이후 호빵은 찐빵을 상징하는 '보통명사'가 됐다.?출시 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은 61억개다. 우리나라 현재 인구(5000만명)를 기준으로 계산하더라도 전 국민이 매년 겨울마다 2.4개씩 먹은 셈이다.

오래 전 추억 속의 호빵은 단팥이 든 게 전부였지만 올해 SPC삼립에서 내놓은 호빵은 20가지를 넘는다. 골라먹는 재미가 추가된 것이다. 이제 막 호빵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

삼립호빵 발효미종 정통단팥과 발효미종 생생야채

■누가 뭐래도 호빵하면 단팥이 최고지

단팥호빵은 대한민국 사람 누구에게나 익숙한 맛일 게다. 고소하고, 달달하고, 부드러운 단팥이 속을 꽉 채운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겁다. '발효미종 정통단팥'에서는 폭신폭신, 따끈따끈 '정든' 추억의 맛이 뭍어난다.

빵은 전보다 탱탱해진 듯한 느낌이다. '발효미(米)종'을 적용한 덕분인가보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토종 유산균과 우리 쌀에서 추출한 성분을 혼합한 발효미종에 쌀 당화액을 더해 감칠맛은 물론 쫀득하고 촉촉한 식감을 살렸다"고 나온다. 어려운 말이지만 좋은 뜻으로 해석하고 넘어간다. 맛있으면 그만이다.

호빵은 반으로 갈라서 오른손 한 입, 왼손 한 입 번갈아가며 먹어야 제맛이다. 단팥소는 옛날보다 풍부해지고, 당도는 조금 낮아진 느낌이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아침식사 대용이라)순식간에 세 개를 먹어치웠다. 배가 고파 단팥소가 뜨거운 지도 몰랐다. 달아오른 입 속을 달래려고 우유와 함께 했는데 단팥의 고소함이 배가 되는 부수적 효과를 얻었다.

'발효미종 생생야채'에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다. 호빵을 고를 때마다 단팥이냐, 야채냐를 고민하곤 했다. 물론 답은 늘 같았다. 나는 단팥, 형은 야채를 골라 반씩 나눠 먹었다.

지금은 단팥과 야채를 4개들이 각각 한 봉지를 먹는다. 형이 아니라 아내, 딸아이와 나눠 먹는다는 점이 달라진 핵심 포인트다. 딸아이가 단팥을 싫어하는 탓에 균형이 맞지 않는 게 흠이다. '생생야채'는 모양도, 맛도 '왕왕만두'를 먹는 기분이다. 고기와 각종 야채가 실하게 들었다. 달달한 단팥호빵 다음에 야채호빵을 먹으니 열 배쯤 더 맛있다.

왼쪽부터 발효미종 듬뿍피자, 발효미종 꿀고구마
왼쪽부터 로제, 따끈화끈 배홍동
왼쪽부터 홀맨 단호박크림치즈, 홀맨 꿀씨앗

■단맛에 매운맛을 더하면 꿀조합이지

'꿀슈크림'은 슈크림빵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120% 저격한 호빵이다. 오직 CU 편의점에서만 판다. 이거 찾느라 동네에 있는 CU는 다 돌아다닌 것 같다. 호빵을 손으로 잘라보면 꿀슈크림이 묵직하게 들어 있다. 빵은 쫀득하면서 탄력이 있고, 슈크림도 꿀(사양벌꿀)이 들어가서 그런지 더 달달하게 느껴진다. 커피 한 잔 곁들인 것이 신의 한수다.

먼저 맛보기로 하나를 먹었고, 나머지 3개는 한꺼번에 전자레인지로 직행한다. 맛있는 음식은 연달아 먹어야지 흐름이 끊기면 맛이 떨어지는 법이다.

아뿔싸, 뜨거워서 호~호~입김을 부는 사이 아내에게 하나, 딸아이에게 하나를 헌납하고 말았다. "이건 회삿일"이라며 저항도 해봤으나 "맛있는 건 가족끼리 나눠 먹어야 한다"는 딸아이 주장에 살포시 묻히고 말았다.

이쯤 되면 호빵을 하나 더 꺼내야 한다. 주인공은 '로제'다. '꿀슈크림'과는 정반대에 가까운 맛이다. 적어도 딸아이의 손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포장지에 쓰인대로 따끈하면서 화끈하다. 속을 보면 피자호빵 비슷한 비주얼인데 살짝 매운 것이 '호빵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맛있게 맵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로제떡볶이 맛은 아니고, 중간에 닭고기가 씹히는 것이 식감도 제법 만족스럽다. 이건 바나나맛 우유와 꿀조합일 듯하다.

■고구마를 꿀에 찍으면 많이 달다

'홀맨 단호박크림치즈'는 단호박과 크림치즈가 섞였다. 치즈보다는 단호박의 맛이 조금 더 강하다. 그런데 '꿀슈크림'과 비슷한 맛이 난다. 나는 아주 흡족한데 치즈를 좋아하는 아내는 실망한 눈치다. "크림치즈의 양을 더 늘려달라. 치즈의 풍미를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면 만족도가 두 배로 올라갈 것"이라는 아내의 소박한 요청이다.

'발효미종 꿀고구마'의 외모는 불그스름한 고구마의 자태를 꼭 닮았다. 반을 자르니 노오란 꿀고구마가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이 아주 흘러내린다. '잔에 넘치는 맥주거품 훔치듯' 하다가는 혼난다. 오래 데웠는지 많이 뜨겁다. '꿀고구마'는 두 말이 필요 없다. 많이 달다. 달달한 고구마를 꿀에 찍어 먹는다고 상상해보라. 다음에는 우유나 커피를 옆에 두고 먹어야겠다.

솔직히 이 둘의 조합의 실패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맛을 연속으로 먹는 건 예상보다 힘들다. 딸아이의 긴급 제안에 따라 '발효미종 듬뿍피자'로 갈아타기로 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미소를 되찾았다.

주황색 빵을 갈라보니 피자냄새가 솔솔 나고 야채와 토마토소스, 치즈가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모두가 상상하는 딱 그 맛이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하나가 사라졌다. 호빵 위에 슬라이스치즈 한 장을 더 얹은 아내는 함박미소로 만족감을 표시한다. 딸아이는 한 입 먹더니 어느새 마지막 남은 하나까지 접시에 담고서는 방으로 사라졌다.

■'배홍동 비빔면'이 '배홍동 호빵'했다

'홀맨 꿀씨앗'은 빵이 햐얀색이 아니다. 호밀분말이 빵 같은 모습이다. 쌀밥만 먹다가 현미밥을 만난 느낌이다. 부드럽고 탱탱한 식감은 그대로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파는 씨앗호떡이 통째로 들었다고 보면 된다. 호빵 속에는 사양벌꿀에 호박씨앗, 해바라기씨앗이 한가득이다. '너무 달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계피향이 은근히 나서 맛이 배가 된다.

여기서 잠깐, '꿀씨앗'은 다른 호빵에 비해 호빵소의 뜨거움이 오래 간다. 혓바닥을 데지 않도록 주의하시라. 무데뽀로 덤비다 혓바닥, 입천장 가진 사람이 여기 있다.

'따끈화끈 배홍동'은 우리 식구 모두가 반한 맛이다. 한 입 먹은 후에 앞다퉈 '원톱' '원픽'을 외쳤을 정도다. 호빵 종류가 워낙 많은 탓에 놓쳤으면 후회할 뻔했다. 사실 포장지와 이름만 봐도 농심의 '배홍동 비빔면'의 분위기가 난다. 얼마 전에 '배홍동 비빔면'을 아주 맛나게 먹었던 터라 기대감이 더욱 커진다.

살짝 매콤한 배홍동 소스의 첫맛에 돼지고기와 채소가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어우러진다. 호빵소가 넉넉해서 더 매력적이다. 먹을 수록 매콤함이 올라가지만 '로제' 이상으로 맛있게 매워서 입이 호강을 한다. "말해 뭐해. 이게 최고네." 아내가 엄지척을 한다. "나도." 딸아이는 외마디를 남긴 채 묵묵히 호빵에 집중한다. 이제 우리 셋의 시선은 남은 하나로 쏠린다.

언제나 그렇듯 '위대(胃大)한' 나의 승리다. 그런데 '배홍동'에는 반칙이 숨어 있다. 보통은 (한계효용의 법칙에 따라)하나를 먹으면 두 번째는 맛이 덜하기 마련인데 이건 반대다. 두 번째가 더 맛있다. 맛에 빈틈을 찾기가 힘들다. 시원한 사이다 한 잔 더하니 이게 바로 '금상첨화(錦上添花)'다. 냉장고에 넉넉히 쟁여둬도 될 각이다.

"I'm still hungry." 여전히 영접하지 못한 호빵들이 줄지어 서있다. 100% 국내산 돼지고기와 양배추를 넣은 '한돈고기호빵'과 민초단 트렌드에 맞는 '민트초코호빵', 한국인의 소울푸드를 모티브로 만든 '찜갈비호빵''김치제육호빵''오모리김치만빵' 등 하나하나 꼽자면 입이 아플 정도다. 언젠가는 모두 먹고 말거다. 겨울은 이제 막 시작됐다.

1980년대 삼립식품 호빵 광고

Copyright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