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인터뷰

한겨레 2021. 12. 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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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사무실에서 '헤겔'이라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상 인터뷰의 조건은 이렇다.

그렇다면 이에 굳이 모차르트 이름을 붙여서 얻는 유익이 뭘까? 가상 인터뷰의 '가상'이 추측을 의미함은 모두가 알고 있다.

가상 인터뷰가 지식을 전달하는 형식치고는 왜곡률이 너무 높지 않냐는 문제 외에도 그게 가졌다고 하는 교육적 효과에 대해 필자는 전부터 회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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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헤겔의 초상.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크리틱] 김영준 | 열린책들 편집이사

그날 사무실에서 ‘헤겔’이라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에 헤겔이 나왔기 때문인 줄은 몰랐다. 화제가 된 문제를 읽어보니, 과연 어려워 보였다. 그렇지만 논란의 원인이 문제가 어려워서인지, 무려 헤겔이 나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헤겔까지 나온 문제를 감히 어렵게 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헤겔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교과서에 나왔으니 수능에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만일 헤겔 문제가 단답형 암기 테스트로 출제되지 않은 게 잘못이라면, 그동안 프랑스식 철학 논술 고사를 모범처럼 떠받들던 그 많은 논의는 대체 무엇을 겨냥한 것이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눈에 띄는 점은 지문이 헤겔과 누군가의 가상 대화로 되어 있던 것이다. 위인이 등장하는 이런 식의 가상 인터뷰가 흥미의 차원에서든 교육적인 목적에서든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십만명의 수험생을 상대로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에 이를 등장시키는 것은 확실히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헤겔이 말했을 법은 하지만 하지는 않은 말에 헤겔 이름을 붙여 놨고 출제자도 이를 알고 있다고 공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헤겔의 대사는 지어낸 것이 아니라 실은 헤겔의 저작에서 축어적으로 인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 걱정은 쓸데없게 된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 출제 의도에 부합하는 인용문을 찾아냈다면 굳이 가상 대화에 넣을 이유도 없어진다.)

가상 인터뷰의 조건은 이렇다. 일단 실존 인물이 하나 이상 있어야 한다. 모두가 허구의 인물이면 가상이라는 말이 무의미하다. 그 인물이 어느 정도 유명하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그가 했을 법한 말을 상상할 수 있다. 기본 형식은 이렇다. 타임머신을 타고 모차르트를 찾아가 비틀스의 음악을 들려주고 의견을 물어본다. 예가 너무 별로인 점은 양해를 구하겠는데 이 설정에서 어떤 괜찮은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진짜 모차르트의 반응이라면 그냥 한숨만 쉬더라도 나름 의미가 생기겠으나, 이는 불가능하니 작성자가 임의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에 굳이 모차르트 이름을 붙여서 얻는 유익이 뭘까? 가상 인터뷰의 ‘가상’이 추측을 의미함은 모두가 알고 있다. 단지 그 약점을 위처럼 극단적으로 상기시키는 경우가 많지 않을 뿐이다. 가상 인터뷰가 지식을 전달하는 형식치고는 왜곡률이 너무 높지 않냐는 문제 외에도 그게 가졌다고 하는 교육적 효과에 대해 필자는 전부터 회의적이었다. 그게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가상 인터뷰는 복화술의 한 형식이다. 아무리 위인이나 천재라 해도 작성자가 아는 것 이상을 말해주지는 못한다. 그것이 1차적인 답답함이다. 여기에 작성자가 제공하는 2차적인 답답함도 추가해야 한다. 그는 자기가 뻔히 아는 답을 위인(물론 자신)이 말하게 하기 위해서 짐짓 모른 체하고 질문을 던진다. 방에는 자기 말고 아무도 없는데 마치 한명 더 있는 체한다. 이런 장면의 괴로움은 작성자가 대개 프로 극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더 심화되기 마련이다.

작성된 가상 인터뷰가 마음에 드냐고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긴 하다. 얼핏 불가능해 보이지만, 가능한 경우도 없지 않다. 스위스 기자 톰 쿠머는 할리우드 스타들과의 수많은 인터뷰로 독일어권에서 유명했다. 2000년 그 인터뷰들 전부가 가짜, 순전히 상상으로 쓴 것임이 밝혀졌다. 쿠머는 변명했다. 이것은 ‘인터뷰 형식을 차용한 인상주의적 묘사의 시도’였다는 것이다. 그 취지는 교육적인 가상 인터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쿠머의 인터뷰는 인터뷰가 아주 잘된 날에도 따내기 힘든 인상적이고 개성적인 발언으로 가득했다. 물론 이런 것에 고마워한 당사자는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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