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싸게 판다더니, 문신 보여주며 '감금 협박 강매'..언제까지 돈에 '목숨'까지 빼앗겨야 하나 [왜몰랐을카]
시민단체, 소비자 위해 중고차 개방
대기업 진출 여부, 올해안 결론날듯
중고차를 구입했던 60대 남성 A씨가 지난 2월 휴대폰에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충북경찰청은 유서를 발견하고 집중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중고차 허위 매물로 구매자를 유인한 뒤 3개월 동안 50여 명에게서 6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취한 사기단을 적발했다고 지난 5월 밝혔다.
사기단은 중고차를 강매하기 위해 문신을 보여주며 협박을 일삼았다. A씨도 이들에게 감금당하고 강제로 대출을 받아 200만원짜리 1t 트럭을 700만원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한국소비자연맹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소비자 피해사례는 5165건에 달했다. 성능·상태 불량 피해가 2447건(47.4%)으로 가장 많았다. 사고이력 미고지 588건(11.4%)으로 그 뒤를 이었다. 사람까지 죽인 허위·미끼 매물 피해도 235건(4.5%)이나 발생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리서치 전문기관에 의뢰해 20~60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비자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 중 54.4%가 중고차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허위·미끼 매물'이라고 대답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 4월 중고차 구매 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도 중고차 사기 심각성을 보여준다. 조사 대상자 2209명 중 688명(31%)이 중고차 사기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사기 유형의 38%는 허위 매물로 조사됐다.
시민교통안전협회·교통문화운동본부·자동차시민연합·새마을교통봉사대·친절교통봉사대·생활교통시민연대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 연합(교통연대)은 지난 4월 '중고차 시장 완전 개방 촉구 100만인 서명'과 '중고차 피해 사례 공유 온라인 소비자 참여운동'에 돌입했다.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서명 참여자가 10만명을 돌파했다. 중고차 시장 전면 개방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가장 많이 접수된 의견은 "허위 매물 뿌리 뽑아 버려요" "사기당하고 돈 날리고, 매매상은 모른 체해도 소비자들은 법을 몰라서 아무것도 못 합니다" 등 중고차 사기 근절 요구로 나왔다.
시민단체는 중고차 시장이 혼탁한 이유가 기존 업계만 중고차를 거래할 수 있는 폐쇄적인 시장 구조에 있다고 지적한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완성차 업체와 같은 대기업 진출을 요구한다.
대기업은 브랜드 이미지와 가치를 높이기 위해 소비자 보호에 적극 나설 것으로 기대해서다. 소비자들도 대기업 진출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중고차 매매업이 2013년부터 5년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신규 진출과 확장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2019년 초 기한이 만료되면서 기존 업체들은 생계형 적합업종 재지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동반성장위원회는 같은 해 11월 중고차 매매업은 생계형 적합업종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해 2월에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지정을 해제했다.
현대차, 기아 등 완성차 5개사는 이에 시장 진출 의사를 밝혔다. 벤츠, BMW 등 수입차 브랜드도 직접 '인증 중고차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도 영향을 줬다.
지지부진하던 중고차 개방 논의는 지난 6월 해결 실마리를 찾았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를 비롯해 주무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와 완성차 업계, 중고차 업계 등이 '중고차-매매산업 발전협의회'를 발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6~9월까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관으로 진행됐던 상생협의에 이어 이번 주무부처인 중기부 주관 상생협상마저 우려했던 대로 최종 결렬됐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절차대로 심의위원회 개최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기부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생계형적합업종심의위원회에 신청하는 것"이라며 "이를 연말 안에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기부가 이달 중 심의위를 개최해 심의를 완료하면 3년 동안 지지부진하게 끌어왔던 중고차시장 개방 문제가 연내에 결론 날 것으로 전망된다.
교통연대와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등 시민단체도 소비자를 대변해 중고차시장 개방을 연내 결론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지난 달 8일 비대면으로 개최된 제19회 자동차산업발전포럼에서 "중기부는 소비자 권익 관점에서 연내에 조속히 중고차시장을 완전 개방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역시 지난달 11일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출 허용을 올해를 넘겨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문을 발표했다.
시민단체들은 인증 중고차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미국과 독일에서 인증 중고차가 소비자 보호, 대기업과 중고차업계 상생에 효과가 높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도 중고차는 '믿을 수 없는 차'로 여겨졌다. 중고차를 '레몬', 중고차 유통을 '레몬마켓'이라고 불렀다.
레몬은 속어로 불량품, 불쾌한 것이라는 뜻이다. 1965년 생산된 레몬 컬러 폭스바겐 비틀이 잦은 고장으로 말썽을 일으키자 소유자들이 중고차로 많이 판매한 것에서 유래했다.
중고차 거래액은 8406억달러(약 989조원)로 신차 판매액 6365억달러(약 749조원)를 훌쩍 넘었다. 신차 판매대수는 2015년 대비 2.4% 감소했지만 중고차 거래대수는 9.6% 증가했다.
미국에서 중고차 유통 규모가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대기업의 인증 중고차를 중심으로 중고차에 대한 엄격한 성능 점검과 품질보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신차는 물론 출고된 지 5~6년 안팎 된 중고차도 판매한다. 그냥 파는 게 아니다. 100~200여 항목을 정밀 점검하고 수리한다. 무상 보증 서비스도 펼친다. 이 차량들을 CPO(Certified Pre-Owned·인증 중고차)라고 부른다.
미국 중고차 시장에서 인증 중고차 비중은 5~6% 수준에 불과하다. 대신 엄격한 성능 점검과 품질보증이 확산되면서 중고차 품질을 높여주고 중고차에 대한 신뢰도 끌어올렸다.
미국 중고차 판매 업체들도 연식과 주행거리, 품질, 재상품화 수준, 서비스 등에 따라 각기 다른 상품을 취급하는 등 역할 분담을 통해 상호 공존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구매력과 취향에 맞는 판매 채널을 선택해 구입할 수 있다.
시장 구조적인 측면에서 미국 중고차 시장은 △신차와 중고차를 모두 판매하는 완성차 브랜드 △중고차만 판매하는 독립 딜러 및 온라인 판매 업체 △중고차 대량 매각 알선 업체(리마케터) △중고차 매매 알선 업체(브로커) △중고차 경매장에 이르기까지 판매 채널이 다양하다.
독일 중고차 유통 규모도 완성차 업체의 인증 중고차 등에 힘입어 성장 추세다. 2019년 중고차 거래대수는 719만5437대다. 신차 판매대수 360만7258대보다 2배 가량 많았다.
독일 중고차 시장에서 인증 중고차 비중은 미국보다 높은 16~17% 수준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상태가 좋은 중고차를 대상으로 엄격한 성능 점검을 실시하고 최대 2~3년까지 보증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물론 별도 브랜드까지 붙여 판매하고 있다.
독일 완성차 업체들은 전시장 내 공간을 분리해 신차와 중고차를 모두 판매한다. 대형 판매점의 경우 신차를 판매하기 위한 건물 외에 별도 건물에서 중고차를 판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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