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서 농담하던 MBTI를.. 왜 면접시험에서 물어봐?

신수지 기자 2021. 12. 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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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취준생 스트레스 된 MBTI 검사
일러스트=김영석

“요즘 MBTI 검사 많이들 하던데, 본인은 무슨 유형인가요?”

취업 준비생 박모(27)씨는 최근 한 대기업 신입 사원 채용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박씨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 나와 당황했다”며 “사실대로 대답하긴 했는데 혹시나 기업이 원하는 MBTI 유형이 아닐까봐 걱정이 됐다”고 했다. 최근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MBTI 검사를 채용 때 활용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채용 시 MBTI 검사지 제출을 요구하거나, 면접이나 자기소개서에서 지원자의 MBTI 유형을 묻는 식이다.

송지원 트러스트원 취업컨설팅그룹 대표는 “MZ세대들은 스펙과 업무 역량은 뛰어나지만, 조직 내에서 세대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보니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인성 검사를 중요시하는 추세”라며 “MBTI 검사를 요구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일정 부분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주로 자신과 타인의 성향을 이해하기 위해 재미로 활용되던 MBTI 검사가 채용 전형에 등장하자 취준생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채용 공고·자소서에 등장한 MBTI

MBTI는 ‘마이어스 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개인의 타고난 심리 경향을 4가지 양극 지표에 따라 분류한다. 에너지의 방향에 따라 외향형(E)과 내향형(I), 인식 유형에 따라 감각형(S)과 직관형(N), 판단 기능에 따라 사고형(T)과 감정형(F), 생활 양식에 따라 판단형(J)과 인식형(P)으로 나눈다. 이 4가지 분류를 조합하면 총 16가지 성격 유형이 나온다. 예를 들어 INFJ라면 ‘내향형+직관형+감정형+판단형’이 된다.

LS전선은 작년부터 자기소개서에 ‘본인의 MBTI 결과를 입력해 주세요’라는 문항을 넣었다. 식품 기업 아워홈도 올해 공채부터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MBTI 유형을 소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장단점을 사례를 들어 소개하시오’라는 문항을 추가했다. 아워홈 관계자는 “MZ세대의 트렌드를 반영해 지원자가 자신의 장점을 더 어필할 기회를 주기 위해 MBTI 문항을 추가한 것”이라며 “특별히 선호하는 유형이 있거나, 채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아예 특정 MBTI 유형을 채용 조건으로 내건 회사도 있다. 서울의 한 중소 광고대행사는 최근 취업 포털에 올린 채용 공고에 “MBTI가 ‘E’로 시작하는 분을 우대한다”고 적었다. 밝은 에너지가 넘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취지였다. 한 유통 스타트업은 채용 공고에 “재기발랄한 활동가(ENFP), 엄격한 관리자(ESTJ), 만능 재주꾼(ISTP)을 선호한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 취준생 커뮤니티에선 ‘합격한 분들 MBTI 유형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P보단 J를 선호할까요?’ 등 기업이 선호하는 성격 유형에 대해 질문하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험자들은 ‘전 ESTJ로 해서 붙었어요’ ‘마지막은 아무래도 J로 하는 게 좋아요’ 등의 조언을 공유하기도 한다.

대학들도 취업 교육에 MBTI를 적극 활용한다. 서울시립대는 지난 6월 개최한 ‘찾아가는 취업투데이’ 행사에서 MBTI 분석 상담 코너를 운영했고, 조선대도 ‘MBTI를 이용한 취업 설계’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연세대에서 ‘진로개발’ 과목을 수강하고 있는 오모(21)씨는 “세 번의 수업에 걸쳐 MBTI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적성에 맞는 직업을 알아봤다”며 “진로 고민이 심한데 MBTI 유형별로 직업을 추천해주는 게 도움이 됐다”고 했다.

MBTI 경우의 수, 그래픽=송수현

◇”챙길 스펙 또 늘었다” 부담 느끼기도

취업 준비생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자신을 표현하는 게 더 쉬워졌다는 의견과 함께, 힘든 취업 준비 과정에 챙겨야 할 스펙이 하나 더 늘었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생 김모(24)씨는 “자기소개서에서 가장 어려운 문항 중 하나가 자신의 장단점을 소개하라는 문항”이라며 “MBTI 유형이 같은 유명인의 사례를 참고하면 단점을 극복한 방법도 금방 쓸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대학생 정모(26)씨는 “기업에선 그냥 참고용이라고 설명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MBTI 검사를 요구할 것 같지는 않다”며 “괜히 잘못 썼다가 MBTI 때문에 떨어질까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실제로 취준생들 사이에선 기업이 직무별로 선호하는 MBTI가 따로 있다는 소문이 돈다. 예컨대 마케팅은 ENFP, 회계는 ISTJ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직무에 적합하다고 알려진 MBTI 유형을 골라 체화하는 경우도 있다. 취준생 현모(28)씨는 “MBTI가 I형으로 시작되는데 왠지 기업에선 내향적인 지원자를 선호하지 않을 것 같았다”며 “직무에 맞는 유형의 특성을 공부한 뒤, 그 유형이 나올 때까지 계속 MBTI 검사를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정작 전문가들은 MBTI 검사를 채용에 활용하는 데 부정적인 입장이다. MBTI 검사를 출판하는 마이어스 브릭스 컴퍼니의 셰리 헤이니 이사는 “MBTI를 채용 평가 요소로 활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채용 후 MBTI로 직원들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할 수는 있지만, 채용 지원자들의 업무 성과를 예측할 수는 없다”고 했다. 김재현 한국MBTI연구소 연구부장도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MBTI는 신뢰도와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인터넷 간이 검사”라며 “정식 검사 결과라 하더라도 MBTI는 선천적 선호 경향성을 알아보는 검사이지 채용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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