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일본어 수업에서 잘렸다

칼럼니스트 최은경 2021. 12. 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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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육아] 스스로 하려는 마음
아이의 일본어 교재. ⓒ최은경

열한 살 땡이가 일본어 수업에서 잘렸다.

"지난번에 이어서 어제 통화를 해보니 문장 외우기가 잘 안 되네요. 읽기는 이제 너무 잘하고 발음은 말할 것도 없이 너무 예쁘게 잘하는데 이제는 단어나 문장을 외우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어른처럼 문법 설명하는 건 좀 어려운 것 같고요… 해서 이제 그만했으면 합니다."

올게 왔구나 싶었다. 오히려 시원했다. 더 이상 일본어를 할지 말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며칠 전부터 아이와 이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기 때문이다. 

아이가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던 건 지난 1월.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온라인상으로 만났다. 지금까지 매일 읽고 녹음해서 보내고 쓰는 일본어 숙제를 거른 적이 없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읽고 쓰는 아이를 보며 뭐라도 될 놈이다 싶어 감동받은 적도 많았다. 그게 신통하고 기특해서 외우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이가 쓴 일본어. ⓒ최은경

수업 6개월을 넘어가면서 단어나 문장을 외울 것을 선생님이 요구했는데 아이는 이대로가 좋다며 흘려 들었다. 선생님이 정해준 문장을 하루 10번씩 읽고 쓰는 것만 좋다고 했다. 이 방법으로는 전혀 공부 효과가 나지 않았는지 선생님이 가끔씩 전화를 해서 외우는 정도를 확인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울상이 되어 말했다.

"엄마, 나 이제 일본어 안 하면 안 돼? 그냥 읽고 쓰는 건 괜찮은데… 외우고 선생님하고 전화 통화하는 거 너무 싫어."

"오케이 하지 마" 이 말이 한번에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 끈기를 모르고 크면 어쩌지? 아니, 그동안 땡이가 한 걸 보면 끈기는 정말 있는 아이인데... 1년 가까이 해 온 일본어인데 이제와서 그만두면 좀 아깝지 않나? 어학은 쉬면 금세 잊는다는데...'

어떻게든 말리고 싶었다. 반면 아이는 아까운 게 전혀 없었다. 원래 기초 과정만 하려고 했고, 일본어를 읽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며 더이상 외우고 싶지 않고 선생님과 전화통화하는 것도 싫다고 딱 잘라 말했다. 선생님과 전화통화하는 동안 핸드폰을 할 수 없다며 울먹였다. 아이고, 두(머리)야.

나는 일본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영어를 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이는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일본어는 하고 싶지 않았는지,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를 좀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나는 몇 달이라도 일본어 공부를 연장하려는 마음으로 그걸로는 안 되고 영어 학원에 가야 한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아이는 절대 싫다고 했다.

그 와중에 선생님으로부터 수업 포기 선언이 온 거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 때문에 선생님이 힘드실 것 같더니(내 딸이지만 가르치기 쉬운 타입은 아니다)... 큰아이가 4학년 때 영어 선생님에게도 비슷한 연락을 받았다. 영어에 흥미가 없어 수업을 더 하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그랬는데 둘째 땡이 너도...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자매가 이런 건 왜 똑같을까. 남편은 이 상황을 듣고 웃었다.

"그래도 선생님들이 다 좋으시네. 양심적이시네. 애들이 못 따라온다고 그만 하자고 하시고. 큰애 때도 그랬잖아?"

"그랬지. 근데 좋으신 분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힘드셨던 거겠지. 수업비를 많이 받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땡이 하는 거보면 나라도 안 하고 싶을 것 같아(ㅎㅎ). 그동안 참고 봐주신 게 감사하지 모."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선생님에게 수고하셨다며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게 일요일이었다. 땡이는 월요일이 되어도 습관처럼 그날 일본어 숙제를 읽고 썼다.

"땡아, 오늘 일본어 숙제했어?"

"응, 했지."

"근데 안 해도 돼. 오늘 하고 내일 휴가야. 땡이가 그동안 일본어 열심히 해서 휴가 주는 거야."

"응? 왜? 나 이제 일본어 안 해? 빨리 말해주지... 괜히 했잖아(울먹울먹)."

"(당황) 아니, 그게 왜 억울한 일이야? 원래 하던 일 했으면 잘한 거지. 이게 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핸드폰 더 할 수 있었잖아."

아이고 두(머리)야. 아이는 심통이 나서 툴툴거리다가 다시 묻는다. 이제 정말 일본어 안 하는 거냐고. 안 하는 거라고 확실히 말해두고 나는 다시 이제 영어 공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하는 거면 충분하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 녀석아. 좀 양심 좀 챙겨. 학원도 안 가지. 하루에 공부라고는 일본어 숙제하는 거랑 연산 문제집 두 장 푸는 게 전부인데… 핸드폰은 4시간이나 하는 녀석이' 혼잣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을 해놓고도 당최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아 심란했다.

다음날 그 날치 핸드폰 사용을 마쳤을 시간이었을까?

"엄마, 그러면 나 하루에 영어 그림책 3번 읽고, 1번 쓸까? 그리고 핸드폰 보너스 시간 얻을까?"

"으응?(왜 황송하지?) 그러면 좋지."

"그럼 그렇게 할게."

"그래라."

뭐지 이건? 오늘 아침 해가 서쪽에서 뜨기라도 한 건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는 영어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는 일에 집중했다.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이럴 수 있는 거였어? 이럴 거면 미리 말해주지. 그러면 엄마가 엄포를 놓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혹시 영어 학원 가기 싫어서 먼저 선수를 친 걸까? 뭐든 아무래도 좋았다. 스스로 하기 시작한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한다는 걸 나는 아니까. 비록 잘렸지만 일본어 공부 11개월로 생긴 믿음이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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