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수도원의 겨울나기
[경향신문]
주위에 천주교 수도자들이 더러 계신다. 수사, 수녀로 불리는 이들. 잘 모르시던데 개신교에도 수도원이 있긴 해. 정교회나 성공회는 개신교 울타리. 외국엔 장로교나 루터교에도 수도회가 있다. 한적한 시골에 수도원이 보통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도심에도 찾아보면 수도원이 보인다.
예전에 서울 가면 성북동의 한 수도원에 묵곤 했다. 알고 지내던 원장 신부가 로마 유학을 떠난 뒤론 인연이 흐지부지되었다. 가끔 피정 행사에 강의를 부탁하던 수도원도 있었는데, 선물로 벨기에 봉쇄수도원 맥주를 주길래 이후 그 맥주의 팬이 되었다. 아침엔 두 발, 밤에는 네 발로 사는 수사 친구도 있었는데, 요샌 건강 때문에 포도주를 끊었다. 나도 몸이 전과 같지 않아서 ‘여기까지만’ 하는 문자를 날리고 싶으나 흉내도 못 내겠다.
겨울이 오면 수도원은 배나 바빠져. 김장도 하고, 두꺼운 솜털 이불도 털어 말린다. 산짐승이나 새들도 수도원 곁에 살면 배고프지 않은 게 마음 씀씀이가 넉넉한 집안 분위기. 짐승도 사람이 두렵지 않은 존재임을 수도승을 만나면 금방 깨닫게 된다.
문득 천주교와 개신교가 같이 어우러진 프랑스 테제 수도원 생각이 나네. 그곳에 도착하면 한국어로 된 수도원 설명 가이드북이 놓여 있지. 돌림노래를 부르는 게 이 수도원의 특징. 짧게 반복되는 돌림노래는 마치 성탄 캐럴을 듣는 것처럼 친근해. “어두운 맘속에, 주여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밝혀주소서….” 기타 코드로 보통 노래하는데 마음대로 화성을 맞추어 4부로 부르면 즐겁다. 천막 성당을 흔드는 황홀한 노랫소리. 수도원의 겨울은 노래로 시작하여 노래로 끝마친다. 외로운 사람들 모여서 외롭지 않게들 살아가지. 산골짝 마을도 수도원만 같아라. 노래를 부르면서, 불을 밝히며 돌림노래를 불러본다. 당신이 따라부르지 않으면 돌림노래란 의미가 없지. 선창과 후창, 인생의 선후배들이 후드티를 입고서 눈보라 연주로 노래를 부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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