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11] 반 고흐 전시
유럽과 미국을 순회하는 ‘반 고흐(Van Gogh)’ 전시가 인기다. 암스테르담의 고흐박물관에 소장된 진품들이 보험에 가입된 후 비행기로 수송, 다른 도시의 미술관에서 열리던 형식이 아니다. 초대형 공간 안에 360° 디지털로 투영되는,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애니메이션이 동반되는 전시다<<b>사진>. 마치 공연 관람과 같다. 그림을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관람자는 앉아 있고 그림이 움직이면서 다가온다. 액자 안에 갇혀있던 장면들이 생동감 있게 살아나 대형 스크린에 투영되면서 미처 몰랐던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기획과 제작의 수준은 높다. 작품에 대해서, 또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한 흔적이 보인다. 전시기획자와 브로드웨이 세트디자이너의 협력이다. 도시마다 선택된 장소에 맞추어 공간을 다르게 연출한 점도 돋보인다. 아쉬운 점은 내가 생각할 시간과 틈을 주지 않고 감상의 방향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그림에 몰입해서 생각에 빠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그림 속으로 밀어 넣고 경험해보라는 느낌이다.
전시장의 다른 관람객들은 마치 메타버스의 아바타처럼 느껴진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들은 그저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심지어는 바닥에 투영되는 이미지를 쫓아 뛰어다니는 아이들조차도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상관도 없다. 내가 향유하는 공간의 또 다른 손님일 뿐, 전시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꿈(夢)’에는 고흐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여행하는 화가의 에피소드가 있다. 조지 루커스 감독의 특수 효과 덕을 보았지만, 고흐 특유의 이국적 색채와 거칠고 진한 윤곽으로 구성된 길 사이를 가로지르는 주인공, 마틴 스코세이지가 역을 맡은 고흐와 만나는 장면은 참신했다. 이제 사람들이 고흐의 작품을 접하는 포털은 다양해졌다. 경계는 무너졌고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 안에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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