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대선 위해 안보 버렸나
무사안일 방사청이 초래한 참사
국방예산, 표퓰리즘 예산과 바꿔
각 군 총장의 직무유기도 한몫
미래의 군은 현재보다도 고도화된 전문성을 갖춘 군대로 변모할 것이다. 규모는 작지만 더욱 치명적인 형태를 띨 것임이 분명하다. 여기에는 첨단무기체계가 자리한다. 우리 군이 강조하는 ‘작지만 강한 군대’의 지향점이다. 무기체계는 군사력의 우위와 유사시 전장의 승패를 가르는 요인 중 하나다. 나라마다 무기체계를 선정하고 이를 적시에 도입해 전력화하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다.
사업타당성 조사나 선행연구가 끝나지 않은 예산이 삭감된 경우는 그렇다 치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무기체계가 뒷전으로 밀린 경우도 있다. 성능저하 문제로 전력공백 문제가 불거진 F-15K 전투기 성능개량 예산은 아예 상정조차 안 됐다. 이 또한 방사청이 거들떠보지 않은 탓이다. 국회 국방위의 한 관계자는 방사청의 업무 태도를 이렇게 평했다. “예산을 주면 좋고, 안 주면 말고”. “누구 하나 불평하거나 따지지 않는 무사안일의 전형”이라고도 했다. 기본설계 예산 72억원 가운데 68억원이 삭감되고 달랑 간접비 5억원만 남긴 해군 경항모 사업을 보면 우려는 배가된다. 이 사업은 그동안 사업추진을 두고 논란이 적잖았다. 국방위 예산 심의에 앞서 서욱 국방부장관이 국방부 실장들에게 직접 의중을 물어볼 정도였다. 실장들은 모두 찬성 의견을 표시했고 장관도 역시 경항모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관련 예산은 국회에서 삭감됐고 이후 국방부는 입을 닫았다.
방위력개선비 ‘줄삭감’이 이뤄진 지난달 국방위에선 전력화 차질을 우려하는 여당 의원들 반대 목소리도 찾기 어려웠다. 여야가 다투던 과거와는 달랐다. 예산 삭감이 여야 합의로 이뤄졌다는 의미다. 덕택에 그동안 지켜온 문재인정부의 ‘자주국방’ 기조는 빛이 바랬다. 대선을 앞두고 ‘매표’용 포퓰리즘 예산 확보를 위해 국방예산을 ‘엿 바꿔’ 먹은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다. 여기에 국방부와 방사청이 ‘꿀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며 거들었다는 추정까지.
정녕 대선을 위해 안보를 희생할 것인가. 국회와 정부 부처를 믿을 수 없다면 이제 군인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각 군 참모총장들이 앞장서 국회와 방사청에 쓴소리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25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이 해군 페이스북에 경항모 예산 삭감에 대한 유감과 사업 추진의 당위성을 역설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육군과 공군은 뭘 하고 있나. 누더기가 된 군 전력증강 예산을 보고만 있을 텐가. 총장님들이 입을 닫는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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