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작업 거부권

도재기 논설위원 2021. 12. 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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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국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4월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에 마련한 시민 분향소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 1항에 규정된 노동자의 ‘작업 중지권’이다. 작업 중지권은 위험으로 부터 노동자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장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당연한 권리이지만 ‘을’인 노동자로선 ‘갑’인 사용자로부터 당할 여러 불이익이 걱정돼서다.

지난해 한국의 산재 사망자는 882명이다. 하루 평균 2명이 넘는 노동자가 출근했다가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어제처럼 오늘도, 부끄럽지만 내일도 그럴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산재 사망률 1위, 한국의 민낯이다. 올해 1~9월 산재 사망자도 678명이나 된다. 전년 동기 대비 18명 늘었다. 원인은 ‘추락’ ‘끼임’ ‘부딪힘’ 등으로 이른바 후진국형·재래형 산재다. 작업 중지권의 활용이나 기본 안전조치만으로도 상당수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의미다.

서울시설공단이 1일 ‘위험작업 거부권’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작업 거부권’은 위험하다고 판단될 경우 노동자가 불이익 없이 언제든 작업을 중단할 수 있어 작업 중지권보다 진전됐다는 평가다. 국내선 소수의 기업이 도입한 가운데 서울시교육청도 직업계고 현장실습생들의 작업 거부권 보장을 추진 중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보장은 사용자의 재산권 등 상충되는 그 어떤 가치보다 우월하다. 노동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 확보란 점에서도 그렇다. 국제노동기구(ILO)가 40년 전 산업안전보건협약을 채택하고, 세계 각국이 생명과 안전을 넘어 노동자가 노동으로부터 초래되는 온갖 위험에서도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 나서는 이유다.

이런 판국에 한 대선 후보가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제 철폐를 언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주 120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7월)고 말한 전력이 있어 “오해”라는 그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온 세상이 노동권을 확대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흐름과 얼마나 동떨어지고 뒤떨어진 노동관인가. 그런 대선 후보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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