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중도층 노린 '이재명 실용주의', 약이냐 독이냐
일부 "국민의견 수렴" 평가속
잦은 정책변경에 진정성 의심
동력될지, 자충수될지 관심
대표적인 불도저식 강경파로 꼽히던 이재명(사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연달아 자신의 대표공약을 철회하거나 정책 입장을 선회하는 등 '중도실용주의' 색채를 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용주의를 강조하며, 여론이 나쁜 정책은 서둘러 수정하는 것은 중도층 표심을 얻기에는 효과가 있겠지만, 자신의 중심 정책을 계속 바꾸면 진정성에 의심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후보가 여론 눈치를 보며 자신의 주요 공약을 쉽게 뒤집는 '여반장'(손바닥 뒤집기) 행보를 하고 있다는 비판적 평가와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는 유연한 행보라는 긍정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20대 대선을 불과 90여일 앞둔 상황에서 상대적 열세를 보이고 있는 이 후보의 '흑묘백묘' 변신이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낼 동력이 될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후보는 1일 연합뉴스TV 개국 10주년 특집 '이재명 후보에게 듣는다'에 출연해 국토보유세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종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 후보는 국토보유세를 반대하는 여론이 큰 것에 대해 "'세' 라는 이름이 붙으니 (세금을 내야 한다는) 오해가 있다"며 "분명히 말하면 국민에게 부담되는 정책은 (국민적) 합의 없이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특히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이) 동의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에 앞서 지난달 29일 채널A 인터뷰에서도 국토보유세에 대해 "국민들이 반대하면 안 한다"며 "증세는 사실 국민들이 반대하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가 불과 보름 전인 지난달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토지 보유 상위 10%에 못 들면서 손해 볼까 봐 기본소득토지세(국토보유세)를 반대하는 것은 악성 언론과 부패 정치 세력에 놀아나는 바보짓"이라고 반대여론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것을 고려하면 급격한 태도변화라고 할 수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토보유세 신설은 반대 여론이 더 높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26~28일 조사해 내놓은 여론조사(KBS 의뢰·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국토보유세 신설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60.2%, 공감한다는 답변은 32.4%였다.
이 후보가 자신의 대표 공약에서 한발 물러서 여론을 수렴하는 태도를 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후보는 올해 또는 내년 초에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최대 50만원까지 추가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놨으나 반대 여론이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한 뒤 전격 철회했다. 또 청년 기본소득과 관련해서도 "집행 계획을 세밀하게 해놓으면 나중에 바꿀 길이 없다"며 "구체적인 방법은 혼자 계획하는 게 아니니 야당 의견을 듣고, 실무 부서와 국민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의견을 냈다가 최근 기독교 단체와 만난 자리에서는 "일방적인 처리는 옳지 않다"면서 신중론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지난 29일 광주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광주 대학생들과의 대화' 자리에서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면서 입법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내가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고, 결코 대의나 국민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어왔던 일들이 많다"며 "그러나 내 확신이 100% 옳은 일도 아니고, 옳은 일이라 해도 주인이 원치 않는 일을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태세 전환의 배경을 설명했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는 "그동안 이 후보가 걸어온 궤적을 보면 절대로 자기 입장을 바꿀 사람이 아니지만, 지금 여론이 이 후보의 주요 공약에 대해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정책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라며 "이 후보를 향하던 '사회주의자'라는 극단적인 비판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고, 융통성 있는 후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어 득표에 유리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다만 "이 후보가 강력하게 내세웠던 소위 '이재명표' 정책을 전부 손쉽게 바꾸면 유권자들에게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살 수 있다"면서 "단순히 표를 목적으로 하는 일시적 변화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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