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금감원 재량권 박탈해야 하나

김현동 2021. 12. 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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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동 금융부장
김현동 금융부장

"금융감독 당국의 재량적 판단이 법에 우선할 수는 없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이달 초 시중은행장들과 만나 던진 말이다. 정 원장의 발언은 앞서 나온 서울행정법원의 우리은행 파생결합펀드(DLF) 징계 취소 소송 결과와 맞닿아 있다. 재판부는 "금감원이 잘못된 법리를 적용했다"고 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는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만 있는데,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을 이유로 금융당국이 제재를 가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법리 해석이다.

금융회사가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금융사고를 막고 주주와 고객 등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해서다. 금감원의 우리은행 DLF 제재 사유를 보면, 우리은행은 해외금리 연계 DLF를 판매하면서 상품 출시의 적정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다수의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실효성있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법원의 판단은 금감원과 달랐다. 법원은 "우리은행이 내부통제를 소홀히 했는지 여부는 제재 사유도 재판의 쟁점도 아니다"고 했다. 내부통제기준이 잘 운영되는지 여부에 대한 금융당국의 재량적 판단을 막아버린 셈이다.

지난달 말에는 3년 넘게 진행된 신한은행 채용비리 항소심 결과가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조용병 회장이 채용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원심과 달리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채용 비리에 기반한 부정 채용죄가 법률에 마련돼 있지 않아 형법상의 업무방해죄로 유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채용비리 재판은 금감원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건전성 검사를 명목으로 수 차례 진행한 현장검사의 부산물이다. 금감원은 채용비리의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하자, 신한은행 죽전 전산센터에서 인사기록 파일을 모조리 복원해 통째로 검찰에 넘겼다. 검사 대상 선정에서부터 검사 강도까지 금융당국의 재량적 판단이 강하게 개입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은보 원장은 작년 말 이뤄진 삼성생명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의 '기관경고' 결정에 대해 표적검사라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감원은 2019년 윤석헌 원장 시절 삼성생명에 대한 종합검사를 진행했다. 검사 결과 삼성생명이 암보험 요양병원 입원비를 지급하지 않은 건에 대해 기초서류(보험약관) 기재사항 준수의무 위반으로 판단해 중징계를 결정했다. 삼성생명이 계열사 삼성SDS에 의뢰해 1561억원 규모의 전산센터를 구축하면서 계약서에 기재된 이행 지연 보상금을 청구하지 않은 것도 중징계 사유에 해당한다.

정은보 원장의 지적대로 삼성생명에 대한 종합검사가 특정 회사를 겨냥한 표적검사였다면, 금감원 스스로 재량권 남용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금감원의 종합검사를 둘러싼 논란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핵심은 금융당국의 재량권을 어느 정도로 허용하고 어떻게 투명하게 할 것인가다. 금융당국은 법안을 제정하는 입법부도 아니고 법률을 판단하는 사법부도 아니다. 대신 금융당국은 광범위한 재량권을 통해 금융에 관한 전문적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당국이 재량권이 없으면 금융회사의 신규 진입이나 인허가 과정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금융회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의 경우에도 재량적 판단없이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당장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주도한 가계부채 억제를 위한 대출총량관리 역시 법적 근거가 없는 금융당국의 재량적 판단이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고, 새로운 금융상품과 금융기법이 만들어지는 금융산업에서 모든 사항을 법률에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일반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 달리 금융산업은 규제적 성격이 강하다. 금융회사의 건전 경영이 훼손되면 국가 경제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고,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도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내부통제기준이든 검사와 제재 양정이든 추상적인 원칙만을 정하고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재량에 맡기는 것이 맞다. 관치금융과 시장자율이라는 양분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관치금융의 폐해는 감독 절차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재량권없는 금감원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

김현동 금융부장 citize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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