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지옥이길 바란다

한겨레 2021. 12. 1. 17: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상읽기]

[세상읽기] 임재성 |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박태조는 1980년 5월 광주 시민군이었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내란실행죄 등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수사 과정에서 고문을 당했고, 10월 광주교도소에 이감되어서는 “면회를 시켜달라, 생필품을 보급해달라”며 단식 농성을 했다는 이유로 교도관들로부터 구타를 당했다. 1981년 4월 특별사면 되었지만 몸이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일도 생활도 불가능했다. 가난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기에 진통제로 연명했다. 우울증과 불면증이 생겼고 과도한 음주로 이어졌다.

전두환의 국가는 그런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화순경찰서 정보과는 그를 3일에 한번꼴로 사찰했고, 지정된 생활지역을 벗어나지도 못하게 했다. 1987년 11월26일, 홀로 생을 이어가던 박태조는 산속 거처에서 사망했다. 그를 사후에 발견한 이는 그가 피를 토하며 쓰러져 있었다고, 심지어 벽까지 피가 묻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마흔의 나이, 박태조는 80년 광주 이후 약 8년 동안 고통받다 죽었다.

서울 이문동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던 전정배는, 1980년 8월 다른 사건으로 경찰서에 연행되었다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전두환)는 ‘사회정화작업’을 천명했고, 수없는 시민들이 재판도 없이 구금되어 ‘순화교육’ ‘근로봉사’라 명명된 가혹 행위를 당했다. 전정배, 그리고 그와 함께 삼청교육대에 감금된 이들은 1981년 6월20일 집단 시위에 나섰다. ‘죄가 있으면 교도소로 보내달라’ 등이 요구 조건이었다. 경계병들은 최루탄으로 시위대를 흩어지게 한 뒤, M16 소총을 발포했다. 전정배는 관통상을 입었으나 방치되었고, 뒤늦게 이송 중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31살 총상으로 사망. 발포 명령을 한 자, 발포를 한 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박영두 역시 1980년 8월 삼청교육대에 구금되었다. 구금 중 ‘정식 재판을 받게 해달라’ ‘빨리 집에 가게 해달라’며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1981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죄 없이 끌려와서 죄가 생겼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재소자 처우 개선을 위한 항의를 이어갔다. 그런 항의가 격해졌던 1984년 10월12일, 청송보호감호소 교도관들은 그를 지하 독방으로 끌고 가 고문을 가했다. 그날 밤 9시 청소 담당 재소자는 박영두의 구토물을 청소하고 소변을 배설한 바지를 갈아입히면서 온몸의 피멍을 보고 수갑과 밧줄이라도 풀어줄 것을 건의했으나 묵살되었다. 다음날 새벽 박영두는 양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변기에 얼굴을 처박고 사망했다. 서른살 박영두, 고문으로 사망. 그의 시체는 등 전체가 시꺼멓게 변해 있었고, 눈동자는 흰자만 보였으며, 윗니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있다. 죽어서까지 억울했던 것이다.

정성희는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81년 11월 교내 시위 도중 서대문경찰서에 연행되었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징집되었다. 당시 만 19살로 징집 연령에 미달했고 신체검사도 받지 않은 상태였지만, 전두환의 80년대에는 문제 되지 않았다. 녹화사업이라 명명된 국가폭력은 불온하다고 낙인찍힌 대학생들을 그렇게 군대로 끌고 갔다. 그의 가족들은 울부짖으며 사방으로 그를 찾아다녔다. 가족들은 훈련소에서 집으로 보낸 정성희의 사복을 받고 나서야 그가 군대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1982년 7월23일 자신의 소총 개머리판을 양발 사이에 끼워놓고 총구를 목 부분에 밀착시킨 뒤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 그의 군복 호주머니에서는 백지에 쓴 “왜 옳게 살기가 어려울까요?”라는 메모가 발견되었다. 보안부대는 그를 지속적으로 감시했고, 프락치로 활용해 학생운동 정보를 파악하게 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20살 정성희는 동료를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자살했다.

전두환은 2021년 11월23일 500여평 자택에서 자연사했다. 90살로 천수를 누렸다. 사후세계를 믿지 않지만,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세계에 심판관이 있다면 간절히 부탁하고 싶다. 피를 토하고 죽은 박태조, 총에 맞아 죽은 전정배, 고문으로 죽은 박영두, 프락치를 강요당하다 자책감에 자살한 정성희. 이 4명을 포함해 그가 최고 권력을 누렸던 1980년대 발생한 수천, 수만의 생때같은 죽음에 전두환이 져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 살펴봐달라. 그가 이승에서 책임을 다했는지도 따져봐달라. 이 정의로운 절차의 이름이 지옥이라면, 난 지옥을 지지하겠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