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펑솨이의 '슬픈 미소'와 올림픽 보이콧 / 박민희

박민희 2021. 12. 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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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유명한 올림픽 보이콧 '실패' 사례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꼽힌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유대인 박해를 시작하자, 인권운동가들과 노동조합, 정치권에서 보이콧 요구가 높았지만, 미국 정부는 '스포츠와 정치는 구분해야 한다'며 올림픽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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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올림픽 보이콧 ‘실패’ 사례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꼽힌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유대인 박해를 시작하자, 인권운동가들과 노동조합, 정치권에서 보이콧 요구가 높았지만, 미국 정부는 ‘스포츠와 정치는 구분해야 한다’며 올림픽에 참가했다. 베를린 올림픽은 나치의 선전장으로 역사에 남았다.

올림픽은 ‘정치적 중립’을 외쳐왔지만 거의 언제나 정치적이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는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항의하는 스페인·네덜란드·스위스가 참가를 거부했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해 아프리카 28개국이 불참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40여개국이 불참했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는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공산권 등 20개국이 불참했다.

내년 2월4일 개막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올해 초부터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 ‘강제 재교육 수용소’에 대한 항의로, 선수들의 출전은 보장하되 정부 대표단은 가지 않아야 한다는 ‘외교적 보이콧’ 요구가 미국과 유럽의 정치권과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지난 11월2일 테니스 선수 펑솨이가 중국 권력 서열 7위였던 장가오리 전 부총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하는 글을 웨이보에 올렸다가 실종된 뒤, 중국 당국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석연치 않은 언론 플레이가 불씨를 더욱 키웠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펑솨이와 30분 동안 화상 통화를 해 “그의 안전을 확인했다”고 했다. 펑솨이의 구체적인 상황이나 통화 내용을 밝히지 않은 채 사진 한장을 공개했을 뿐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올림픽 수익’ 때문에 중국 당국의 인권 침해를 은폐하는 ‘공범’이 되었다는 국제적 논란에 휩싸였다. 중국이 관영언론을 동원해 국제사회를 향해 ‘펑솨이는 아무런 일도 없다’며 대대적인 선전에 나섰지만 펑솨이가 자유로워졌다고 믿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 당국을 대변하는 후시진 <환구시보> 편집장이 펑솨이가 웃는 동영상과 함께 “어떤 소녀가 압박을 받아서 가짜로 이렇게 해맑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가?”라고 트위터에 올린 글은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일 수도, 불에 뛰어들어 스스로 죽는 나방이 되더라도”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리겠다던 펑솨이에게 이렇게 ‘슬픈 미소’를 짓게 만든 것은 어떤 압박과 회유일까.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다가올수록 국제사회에서 보이콧 요구는 확산될 것이다. 인권에 목소리를 높여온 유럽 국가들, 특히 독일의 향방이 관건이다. 독일 새 연립정부가 중국 인권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중국 당국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중국 정부는 ‘시진핑 사상은 21세기 마르크스주의이자 중화문화의 정수’라고 한 ‘역사결의’에 이어 베이징 동계올림픽으로 국제적 위상을 과시하고, 내년 말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으로 나아가는 ‘3단계’ 계획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보이콧 움직임이 확산되자 코로나19 확산을 명분으로 ‘간소한 올림픽’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보이콧을 당하기 전에 올 만한 나라를 골라 초청하는 전술로 맞서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중국 외교 사령탑인 양제츠 중앙정치국위원의 초청으로 2일 중국을 방문한다. 올림픽 보이콧에 직면한 중국이 ‘종전선언 역할론’으로 한국을 끌어당기는 포석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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