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의 그 씁쓸한 자리

한겨레 2021. 12. 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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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와 결혼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이제 3주.

결혼 준비 과정에서는 90% 이상의 의사 결정권을 가진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신부가 '왜 결혼식에서는 그 위치가 달라지는가'하는 것이다.

신부와 신랑이 함께 주인공이 되어 주체적으로 결혼 준비부터 결혼식까지 '함께' 만들어나가는 웨딩 문화가 조금씩 정착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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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쿵쾅]내 이름은 김쿵쾅 14
결혼. 게티이미지뱅크

“신부님~ 스튜디오는 어디로 하실래요? 여기는 인물 위주 사진 좋아하는 신부님들이 많이 찾으시고, 여기는 야외 스냅 느낌 좋아하는 신부님들이 찾으시고, 여기는…”

남자친구와 결혼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이제 3주. 웨딩플래너에게 상담을 받으러 갔는데, 넓은 공간에서 테이블마다 상담을 진행하는 커플들의 풍경이 다소 괴이했다. 내 플래너를 포함한 모든 플래너가 신부와만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플래너가 말하기를, 결혼을 준비하며 내리는 결정의 90% 이상은 신부 손에 달려있다고 했다. 그러니 “어느 업체가 마음에 드시는지 신부님이 결정해달라”고 했다. 결혼 준비가 신부 위주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겪어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결혼은 분명 신부와 신랑 둘이서 하는 건데, 플래너와 나, 예비 신랑 세 명이 있는 단톡에서도 플래너는 모든 말을 “안녕하세요. 신부님~.”으로 시작했고, 의사 결정을 할 때마다 신부인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때마다 나는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하고 플래너가 묻지 않은 신랑의 의사도 함께 물었다.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의 줄임말인 ‘스드메’. 결혼 준비는 이 ‘스드메’만 해결되어도 절반은 완성되었다고들 말한다. 이 ‘스드메’ 중에 신랑의 비중은 약 20% 정도. 웨딩 스튜디오의 에스엔에스를 봐도 신랑의 단독 사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신부의 단독 사진은 한 사진 걸러 하나꼴로 전시되어 있다.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빌리듯이 신랑도 예복을 빌리거나 산다. 신랑의 예복 가게는 ‘신부가 드레스투어 가는 날 잠깐’ 들르는 곳이었고, 머리 손질과 화장도 ‘신부가 정한 샵에서 잠깐’ 받는 것이었다. 결혼은 분명 신부와 신랑 둘이 하는 건데, 결혼 준비 과정에서 신랑은 철저히 ‘들러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반면, 신부는 그야말로 ‘무적의 존재’ 같았다.

요즘 내가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신부의 위치’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는 90% 이상의 의사 결정권을 가진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신부가 ‘왜 결혼식에서는 그 위치가 달라지는가’하는 것이다. 결혼식 시작 전에는 신부 대기실에 얌전히 앉아있다가 결혼식이 시작하면 ‘아버지의 손’을 잡고 ‘버진 로드’를 걸어 들어가 아버지가 신랑에게 내 손을 건네주면 수줍은 듯 미소를 짓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게 신부였다.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딸은 아버지의 ‘재산’이었던, 그래서 신랑이 결혼을 위해 신부의 아버지께 엄청난 금액의 돈을 지불했던 그 역사가, 그리고 그 날, 정확히는 ‘아버지가 큰돈을 버는 날’을 축하하기 위해 ‘재산이자 주인공’인 신부를 한껏 치장했던 인류의 그 문화가 아직도 남은 탓일까.

그렇다고 해서 ‘신부 입장은 나 혼자 하겠다’고 말하면 엄청나게 서운해할 아버지를 뒤로하고, 대기실 밖에서 하객을 맞이할 수 없게 디자인된 웨딩드레스에 구두를 신고 몇십분씩 서서 하객을 맞이할 용기는 없다. 외국에서 유행한다는 웨딩 수트(정장)도 알아보았지만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원래 ‘결혼식’이라는 것 자체가 ‘나의 축제’이기 전에 ‘어른들의 축제’이기 때문에 ‘남들처럼’ 웨딩드레스를 입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거부할 용기도 없다.

분명 결혼 준비를 할 때는 신부가 참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존재였는데, 막상 ‘결혼식’을 하려고 보니 신부의 위치가 결혼 준비를 할 때와는 너무 달라 보여서 씁쓸하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씁쓸하다 한들, ‘관례’를 따르지 않아 서운해할 부모님을 두고 내 멋대로 할 용기는 또 없어서 더 기분이 이상하다. 그래도 요즘은 신부 입장할 때 신랑과 함께 입장하거나 신부 혼자서 입장하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이렇게 조금씩 웨딩 문화가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 신부와 신랑이 함께 주인공이 되어 주체적으로 결혼 준비부터 결혼식까지 ‘함께’ 만들어나가는 웨딩 문화가 조금씩 정착하기를 바라본다. (끝)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당사자의 온라인 칼럼 ‘내 이름은 김쿵쾅’의 연재를 이것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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