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성, 첫 스승 윤용일과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김홍주 2021. 12. 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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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일 감독과 남지성이 10년 만에 마음을 터놓으면서 속얘기를 나누었다(사진/최대일 작가)

우리, 잘 할 수 있을까?

남지성_ 18살의 제가 국내 최고의 팀(삼성)에 합류하게 될거라곤 정말 생각조차 못했어요. 또래 중에서도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코치님께서 어떻게 저를 선택하셨는지 늘 궁금했어요. 제 가능성을 믿지 못했기에 주눅들어 있기도 했고요. 우리 집이 아닌 곳에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거든요.
윤용일_ 물론 주니어 시절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지. 개인적으로도 너를 잘 몰랐고. 당시 주니어 대표팀 송형근 코치가 너를 추천했어. 그게 무슨 대회였더라?

남지성_ 주니어 데이비스컵이요. 
윤용일_ 맞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있다가 제주도 주니어대회에서 너를 처음 봤지. 톱 선수들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성실함이 보이더라. 그리고 겸손했고. 선수의 성적이나 기술적인 면을 높이 사는게 일반적이었지만 너한테는 다른게 보였어. 

남지성_ 저를 왜 뽑았냐고들 하셨을 거 같아요.
윤용일_ 다른 시작이었어. 톱 플레이어가 아닌 선수가 성실함으로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궁금해지더라고.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남지성_ 전에도 저같은 스타일을 지도해 보셨어요?
윤용일_ 아니. 삼성증권이라는 팀 자체가 톱 선수들만 있었으니까. 대회마다 8강 문턱까지만 가는 너를 두고 ‘된다 안 된다’는 얘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지. 나의 선택을 두고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했지만 그럴수록 성실함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더라고. 텍사스 퓨처스대회(2013년 2월) 생각나? 주니어 랭킹 1위(2011년 1월) 출신이었던 이리 베슬리(체코)랑 4강에서 만나 비록 패했지만 경기 내용은 네가 훨씬 좋았어. 그 때 느낌이 오더라. ‘아, 할 수 있겠다’라고. 그리고 나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너무 기분 좋더라. 만약 이겼다면 더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을텐데... 그 후로는 누가 뭐라고 하든 너에 대한 확신을 밀어붙일 수 있었어. 사람들은 모를거야. 네가 어떻게 연습하고 경기를 해내고 어떤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지. 그저 경기에서 지는 모습만 보고 가시 돋힌 말들을 했을 뿐. 

남지성_ 정말 멘탈이 나갈 때도 있었고 항상 힘들었다는 기억만 가득해요. 코치님은 달래주시는 스타일이 아니라 밀어붙이기만 하셨으니까요. 경험도 없는데다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버거운데 매일 푸쉬하셨죠. 코치님께서 칭찬해 주신게 딱 3번인데 그 경기가 그 중 한 번이었어요. 저도 그 때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윤용일_ 칭찬에 인색하긴 했지. 차별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네가 강해지기를 바랬어. 힘든 투어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런데 네가 이겨내더라고. 현실을 못 받아들이는 선수도 있었지만 너는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내면서도 불평하지 않았어. 그리고 어느 연말엔가 그 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며 인사를 했을 때 얼마나 고맙고 뿌듯하든지...

남지성_ 먼 타지에서 코치님과 둘이 생활하면서 외롭기도 했지만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털어놓을 수도 없었어요.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지만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버텼다는게 맞는 표현일거에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고 참아지더라고요.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했던 건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어요. 그 시절 지금의 마음 가짐이었다면 더 독하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지금 인정받으면서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성적이 잘 나오거나 호주오픈에 가거나 좋은 일들이 있을 때면 김일순 감독님과 윤 코치님이 더 많이 떠올라요.
윤용일_ 나도 경험을 해봤기에 더 혹독하게 했어. 안되는 걸 하는게 아니라 된다고 믿고 함께 가는 거였으니까. 패하는 경기가 쌓였지만 한 번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 그저 훈련의 연장이려니. 삼성증권 팀이 해체되고 나서 적당히 살아도 될텐데 너는 대견하게 여전히 도전 중이고 그 때 우리의 고생이 헛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게 해줬지. 나한테 불만도 많았지?

남지성_ 음... 얘기하려면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웃음) 코치님은요?
윤용일_ 난 거의 없는데... 과감하지 못했던 거 정도? 정말 고생해서 훈련하고 전쟁터에 나갔는데 잘 안되니까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데 넌 너무 태평하잖아. 중국 실내코트 경기 기억나? 너무 화가 나서 라켓주면서 부수라고 했잖아. 반드시 이겨야 되는 경기를 지니까 뚜껑이 열리는데 넌 편안하더라고. 그 때 라켓 형태가 없을 정도로 제대로 망가뜨렸는데.

남지성_ 하하하
윤용일_ 그 때 내가 엄지척 해줬잖아. 다른 사람은 도저히 이해 못했을 거야. 파이터 기질을 못 뿜어내는 네가 안쓰럽더라고.

남지성_ 너무 순하기만 하고 내성적인 저 때문에... 제가 봐도 저같은 성격은 살아남기 힘들어요. 코치님은 승리하기 위해서 라켓도 부수고 공도 던지면서 표현하라고 하셨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저답게 마인드 컨트롤하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중이에요.
윤용일_ 네가 틀렸다는 건 아니야. 긴장과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던 거지. 굳어버리면 경기를 그르치니까.

남지성_ 여기서 버티고 따라가면 나도 언젠간 궤도에 올라갈 거라는 믿음은 있었어요. 코치님이 너무 무섭고 미웠지만 그래도 싫어한 적은 없었어요. 
윤용일_ 몰랐는데...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내 마음을 알아주겠거니 했지.

남지성_ 결과가 나오고 있으니 이제는 추억이라며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윤용일_ 가끔씩 제자들이랑 소주 한 잔 하면서 마음속 얘기를 들을 때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해. ‘얘네들은 내 생각하고 많이 달랐구나’ 하면서. 하지만 ‘내 진심을 알아주겠지’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모든게 가능했던 거야.

네가 증명한 진실, 불가능은 없다

남지성_ 주변의 시선 때문에 힘든 적도 있으셨죠?
윤용일_ 황당, 충격이라고 할까.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우리를 곱지 않게 보기도 했으니까. 잘 모르는 누군가가 ‘생고생한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괜찮았어.

남지성_ 저도 처음엔 몰랐는데 1, 2회전 탈락을 반복하다보니 그런 얘기들이 오간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런데 김일순 감독님께서 ‘지성이가 안된다면 내가 사직서를 내겠다’라고 하시면서 힘을 실어주셨잖아요. 부모님같은 감독님과 코치님을 위해서라도 독해져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에요.
윤용일_ 뭐 있노?

남지성_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생각나시죠? 제대로 터닝 포인트였어요. (임)용규 형이랑 저를 복식 조로 믿어주셨는데 제가 기대치에 따라가지 못했잖아요. 그 자리를 (정)현이가 들어가서 금메달을 따냈죠. 응원석에 앉아있는데 자괴감과 한심함이 얼마나 컸는지 몰라요. 아시안게임 끝나고 거의 일주일을 먹지도 않고 충격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어요. 곧 한국선수권(당시 1천만원으로 상금이 인상되면서 규모가 커짐)도 있는데 넋이 나가있으니까 저를 부르셨죠. 그 때 거의 2시간을 넘게 말씀해주셨는데 사실 귀에 하나도 안 들어왔어요. 
윤용일_ 선수 시절 겪었던 게 떠올랐어. 겉으로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독기를 품었으면 했지. 백핸드가 단점이었던 나한테 모두가 안 된다고만 했었거든. ‘네 슬라이스는 아니야’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마음에 이글거리는게 생기더라고.

남지성_ 그런데 기억에 남았던 말씀이 하나 있었어요. 속으로 더 강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꽂히는 거에요. 그리고나서 한국선수권 단,복식 2관왕을 하니까 ‘우와, 이런거구나’라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외유내강’을 마음에 새겼어요.
윤용일_ 나도 너에 대한 주변의 평가를 잠잠하게 만들 찬스라는 생각에 결승전을 앞두고 잠이 안 오더라. 국내 1위가 되었을 뿐만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으니까. 네 스스로 자신을 다잡고 일어선거야. 

남지성_ 하지만 여전히 랭킹이 낮긴 해요.
윤용일_ 높은 랭킹에 오르는 것도 물론 대단하지만 네가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 자체만으로 높이 살만한거야. 모든 선수가 100위 안에 들 순 없지만 모두가 노력하고 있잖아. 근거 없는 무한 긍정이 아니라 불가능은 없어. 너희들이 그걸 보여주고 있잖아. 

남지성_ 코치님은 항상 ‘하면 된다’라고 하셨는데 알게 모르게 저도 몸에 밴 것 같아요. 
윤용일_ 안되는 이유를 찾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도전하는데 집중하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있으니까.

남지성_ ‘꼭 100위 안에 들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테니스를 오래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스케줄 관리라든가 정해지지 않은 일정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이 있어요. 예를 들면 이번에도 동계 훈련은 가지만 그 다음 일정을 모르니까 언제 귀국할지를 정할 수 없는 거죠. 2월일지, 5월일지 과연 언제일지... 이럴 땐 어떻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질까요? 저는 미리 계획을 정해놓고 움직여야 안정이 되거든요.
윤용일_ 음, 어떤건지 알겠네. 쉽지 않겠지만 스케줄은 최대로 잡고 생각은 단순하게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출국과 입국을 반복하기 보다는 한 번 나가면 길게 뛰었으면 한다. 힘들겠지만 그렇게 버티다보면 결국 성적으로 나올 수 있는 힘이 되거든. 그게 핵심이야.

남지성_ 외롭고, 음식도 그립고요. 그걸 참아내야 된다는 게...
윤용일_ 버텨내면 기회는 와. 계속해서 뛰다 보면 어느 순간 공이 이만큼 크게 보일 때일 가 있거든. 그 찬스를 잡는 거야.

남지성_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즐기면서 투어를 다닐 수 있을까요?
윤용일_ 지금 즐기고 있는 거 아니야? 그렇게 보이는데~ 쉽게 말하는 거 같지만 지금 행복하게 뛰고 있는 거 같다. 내가 31살에 은퇴한다고 했을때 선배들이 그렇게 말렸는데 그 말이 안들리더라. 그런데 딱 1년 반 지나니까 복귀하고 싶어지더라고. 다시 돌아가면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즐긴다고 얘기하는 널 보니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투어를 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더 좋겠고.

남지성_ 현타가 올 때 현명하게 넘어가려면요?
윤용일_ 아내와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지. 내가 투어 코치를 오래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해. 꼰대소리 들을 수도 있지만 내가 투어 뛸 땐 통화료가 100만원씩 들었고 영어 사전 갖고 다니면서 말을 해야 했어. 그거 생각하면 지금은 즐길 수 있는 게 많으니까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좋게 생각하면 끝도 없지? 나랑 다닐 때를 생각해봐. 나처럼 듣기 싫은 소리 하는 사람도 없고 말이야.

남지성_ 너무 많은 자유가 주어지면 제약이 있을 때보다 안 좋은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자유라는 건 그만큼 책임감이 커지는 거니까요. 그 책임감을 통제할 나이도 되었고 그 상황도 즐기려고 노력하고는 있어요. 
윤용일_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맞아. 죽도록 훈련에 매진해야 할 시기가 있고 즐겨야 할 시기가 있고. 만약 20대 초반에 네가 골프를 배운다고 했으면 욕했겠지만 이제는 내가 추천하는 것처럼. 

남지성_ 그래도 ‘옆에 코치님이 있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잘 모르는게 생기고 풀리지 않는게 생기면 ‘이렇게 해라’라고 옆에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거든요. 아직은 그럴 때가 많아요. 아무도 없이 혼자서 해결해야 할 때, 매번 연락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윤용일_ 시간의 힘을 믿는다. 너무 빠른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 않아도 괜찮아. 일본에서 치렀던 2014년 데이비스컵 생각나지?

남지성_ 2번째 뛰는 데이비스컵이었어요.
윤용일_ 경기 앞두고 밤을 꼬박 샜어. 네가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서 자신의 볼을 치지 못할까 봐. 잘 되면 엄청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일 경우는 그야말로 선수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땠어? 오히려 상대가 무너지고 네가 이겼잖아.

남지성_ 저의 데이비스컵 첫 승이었죠. ‘너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라는 기운까지 주셨으니까요. 
윤용일_ 데이비스컵의 압박감은 말로 할 수 없지. 국가를 대표한다는 건 톱 선수들조차 실력 발휘를 못하게 만드는 거니까.


2012년 삼성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남지성과 윤용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너를 믿는다

윤용일_ 가끔씩 그런 생각을 했는데, 네가 은행원이라면 좋았겠다라고. 터프한 느낌없이 마냥 성실한 너한테 딱이잖아.
남지성_ 코치님은 무조건 운동 선수를 하셨어야 해요. 테니스처럼 상대하고 멀리 떨어져서 하는 거 말고 격투기 같은거요. 워낙 승부 근성이 강하시잖아요.

윤용일_ 고3때 태릉에서 훈련할 때 복싱 선수 스카웃 받은 적 있었는데. 그 때 전향했으면 세계 챔피언 됐을걸...
남지성_ 복싱, 진짜 잘 어울리는데요. 하하하.

윤용일_ 메이저 대회에서 경쟁력 있는 모습과 너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올 때의 기분은 뿌듯함을 넘어서더라. 남들보다 타이트하게 훈련시켰던 옛날 생각도 나면서. 욕심이 더 있는데 네가 국내 대회 전관왕을 하는 거.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겼던 것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말이야. 강해진 모습으로 단 한 게임도 내주지 않았으면 하는...
남지성_ 그래도 코치님 덕분에 독해질 수 있어서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코치라면 저같은 선수는 사절하고 싶어요. 운동 선수 자질이라곤 없잖아요. 코치님을 못 만났다면 지금 테니스를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윤용일_ 지금이 행복한 거라는 믿음으로 앞으로도 길게 투어를 뛰자. 10년 후, 지도자로서 아니면 다른 모습이더라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겠지. 너희 세대가 테니스계에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후배들을 많이 도왔으면 좋겠다.
남지성_ 결혼을 해 보니까 생긴 고민이 있는데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과 투어를 뛰는 것, 두 가지를 다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윤용일_ 아... 항상 죄인인데. 아내가 없으면 우리는 없는 거니까. 서툰 표현으로라도 항상 존중하는 마음을 전하고 아내가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믿고.
남지성_ 절대적, 네.

윤용일_ 코로나 때문에 한참을 못 만났는데 운동을 떠나 스승이라고 항상 떠올려줘서 고맙다. 현실에 맞게 지금처럼 꾸준히 최선을 다하면서 이런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면 참 좋겠다. 투어 코치가 되든, 강의를 하든, 사업을 하든 너의 경험은 반드시 큰 힘이 될거야.
남지성_ 제 테니스 인생의 90%를 만들어 주신 코치님, 당시에는 저승사자처럼 느껴지고 아침에 눈뜨면 얼굴보는 게 힘들고 너무 무서웠지만 지나고나니 얼마나 큰 마음을 주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직접 부딪히면서 성장해 나가는 게 테니스뿐만 아니라 인생의 큰 밑거름이 될 거라고, 성공적인 인생으로 끌어줄 거라고 말씀해주셨던 것을 항상 떠올리겠습니다. 이제는 그런 마음을 후배들에게 베풀어 주고 싶어집니다. 100위 안에 드는 선수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은사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운이었습니다. 쑥쓰럽지만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참, 미국에 있을 거라서 미리 인사드릴게요. 메리 크리스마스요!

(진행 안진영 객원기자)

글= 김홍주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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