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대중의 5·18과 이재명의 5·18

기자 2021. 12. 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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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문재인은 全·盧 빈소 조문 안 해

5·18 피해 DJ는 용서하고 화해

노무현은 北핵실험 대응 물어

李는 “학살자” 공격하고 특별법

尹은 여론 나빠도 조문했어야

5·18을 광주에만 가둬선 안 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거(死去)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보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했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두 전직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어떻게 보냈을까. 김대중은 정치적으로 1980년 5·18의 최대 피해자였다. 전두환 등 신군부는 당시 내란 음모 혐의를 뒤집어씌워 김대중을 체포했고, 신군부에 협조하라고 회유했다가 거부당하자 군법회의 등을 통해 1981년 1월 사형을 선고했다. 김대중은 인간적·정치적·법적으로 전두환·노태우를 결코 좋아할 수도, 옹호할 수도 없는 사람이다.

1987년 6·29선언으로 정치적 족쇄가 풀린 김대중은 9월 8일 무려 16년 만에 광주를 방문한다. 금남로에 수십만 인파가 몰려나왔다. 김대중은 망월동 5·18 묘지에서 유가족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추도사를 하면서도 몇 차례나 서럽게 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전·노 사면을 권유했고, 이듬해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을 논의하며 예우했다. 왜 그랬을까. 진보·호남을 기반으로 한 소수 정권의 한계 때문에 보수·영남 세력의 협력을 끌어내려는 고육책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뿐일까. 김대중은 퇴임 7년 뒤 펴낸 자서전에서 ‘국민에게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진심일 것이다. 김대중은 평생 “피해 당사자가 화해 당사자”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도 앞장섰다.

넬슨 만델라가 보여줬듯이 용서와 화해를 통한 국민 통합은 정치 지도자에게 가장 숭고한 가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10월 북한의 첫 핵실험 직후 전두환·김영삼·김대중을 초빙해 의견을 들은 것도 통합을 통한 위기 대응으로 봐야 한다.

전두환·노태우, 특히 전두환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기 어렵다. 두 사람은 12·12 쿠데타로 헌정 질서를 파괴했으며, 5·18 당시 광주 시민을 유혈 진압한 책임이 있다. 전두환은 재임 당시 야당·언론·학생·종교 및 시민단체 등을 탄압했다. 그런 탓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전두환 사망에 조화조차 보내지 않았다. 노태우 빈소에도 조문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이 현직 대통령이었다면 문재인처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두환이 만든 민정당의 유산도 승계한 국민의힘의 대응도 생각할 대목이 많다. 전두환의 사망은 ‘1노 3김’ 등 1987년 체제의 주역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한 시대가 마감됐음을 의미한다. 적어도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는 조문을 했어야 했다. 1987년 체제의 공과를 정리하고, 2022년부터 펼쳐질 새로운 미래에 대해 웅변했어야 했다. 윤 후보는 애초 조문할 뜻이 있어 보였지만, 참모들 만류로 마음을 바꾼 것 같다. 정치 지도자가 여론만을 의식해서는 안 된다. 김대중이 전·노 사면을 건의했을 때 광주 시민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의 대응은 예상대로였다. 여론이 전두환에게 싸늘하자 “학살자가 천수를 누렸다”며 공격을 시작했다. ‘역사왜곡단죄법’에 이어 소급 입법을 해서라도 ‘전두환 추징금 환수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5·18은 법적·정치적·역사적으로 민주화 운동으로 확정됐다. 광주와 대한민국을 넘어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인류의 유산이 되고 있다. 2019년 6월 홍콩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지난 5월 미얀마 쿠데타 반대 시위 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5·18이 광주만의 문제인 것처럼, 정치 쟁점인 것처럼 소모되고 있다. 5·18을 독점한 듯한 여당의 태도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전두환은 아무런 반성도, 사과도 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속 분노와 저주로만 날밤을 새울 것인가. 반성과 사과가 없어도 용서와 화해를 추구했던 만델라와 김대중의 고민을 곱씹어봐야 한다. 몇 가지 작은 변화도 있다.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 씨는 “남편을 대신해 사과한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광주에서 “전두환을 용서하자”고 표 떨어질 말을 했다. 그런 변화를 굳이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전두환의 네 자녀가 5·18 묘역에 참배하는 날이 올 것이다.

‘문재인의 민주당’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더 낯선 구호다. 민주당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하는 당으로 남는 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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