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차주들 아우성 입막음하는 금융당국의 해명들

박소정 기자 2021. 12. 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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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출금리 상승’ ‘예대마진 급증’과 관련해 사실과 다르거나, 일부 또는 일시적인 현상이 시장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오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11월 18일 금융당국 설명자료)

“4분기 입주 예정 사업장에서 잔금대출이 차질 없이 공급되고 있습니다.” (11월 26일 금융당국 보도참고자료)

이달 들어 금융당국이 내놓는 해명들이다. 대출금리가 납득할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치솟고, 입주 예정 단지에서 잔금대출이 나오지 않는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자 당국은 예정에 없던 기나긴 쪽수의 자료를 내고 설명에 나섰다.

두 사안의 공통점은 비난의 화살이 모두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이런 여론을 잠재우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쉽사리 설득되지는 않는 분위기다. 소비자들은 빠른 대출금리 상승에 비해 더딘 예금금리 상승을 두고, 은행들이 폭리를 취하게끔 금융당국이 유도 내지 방관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금융당국은 이를 두고 “대출 규제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 유동성 축소에 따른 준거금리(각종 대출의 기준이 되는 금리) 상승이 주요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5대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 평균은 지난 6월에서 10월, 0.62%포인트(P) 올랐는데, 이 중 준거금리 상승분이 0.44%P로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예시를 들었다. 가산금리 상승 영향은 미미하다는 취지다.

그런데 같은 현상에 대해 한국은행은 정부 규제 강화로 인한 가산금리 상승을 또 하나의 이유로 꼽았다. 한은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금리 추이를 놓고 비교했지만, 금융당국은 하반기 상승분만을 놓고 본 데서 차이가 비롯됐다. 금융사들이 규제 준수를 위해 이미 올 초부터 대출금리 인상에 나섰는데 이런 시그널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시장 논리에 따라 오른 부분이 분명히 있었지만, 금융당국의 해명에서는 대출 규제의 영향이 언급되지 않은 셈이다.

금융당국의 설명 후 대응 방식에 일관성이 없었던 점도 이런 비판을 뒷받침한다. 시장 탓이라고 해놓곤 두 금융당국 수장이 ‘금리 추이를 모니터링하겠다’며 은행권을 연일 구두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에 부응하듯 은행들은 최근에서야 부랴부랴 수신금리를 올렸다. 대출 규제 영향을 제대로 검증했거나, 충분한 시간을 두고 분석했더라면 이런 번복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4분기 입주 예정지들에서 은행의 거부로 잔금대출이 막힌다는 불만에 대해선, 공급 계획과 비교해 볼 때 연말까지 차질 없이 대출이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을 내놨다. 수도권의 한 입주 예정자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토로했다. 아예 협약 금융사를 구하지 못했던 몇 달 전보다는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은행 등 1금융권보다는 새마을금고·신협 같은 2금융권에서 잔금대출을 받을 길이 더 넓어진 것일 뿐이라는 불만이다. 금융업권별 취급 비중은 자료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자료 배포 하루 만에 새마을금고·신협이 12월 신규 주택담보대출 취급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그마저도 막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증폭되기도 했다. 이 입주 예정자는 “한도의 20%는 시중은행, 80%는 새마을금고에서 진행하기로 된 탓에, 선착순에 들지 못한 주민은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로 2금융권에 손을 벌리고 있다”며 “갑자기 새마을금고 쪽에서도 대출이 막힌다고 통보한 상황이라 연내 신청할 수 없는 입주민들이 속출할 판국”이라고 전했다. 현실이 이런데 문제없이 잘하고 있단 취지의 설명은 무책임하게만 들린다.

일주일 간격으로 내놓은 두 설명 자료가 진정 실수요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인지, 단지 금융 정책에 무지한 국민을 계몽하기 위한 것인지 궁금하다. “오해가 있다” “차질 없다”란 언어들도 현실을 돌아보면 단정적이고 섣부르게만 느껴진다. 오죽했으면 금융위원회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이런 자료를 두고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내 대출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란 씁쓸한 농담이 나올까 싶다.

반박하는 데 급급하기보다 좀 더 시간을 들인 면밀한 분석을 통해 규제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모습이 있었더라면, 아우성도 조금은 누그러지지 않았을까. 설득되지 않는 일방적인 설명은 입막음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알아주지도 않으니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는 푸념 섞인 사연들이 자꾸만 제보 메일함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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