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의 길 [편집실에서]

2021. 12. 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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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정치부기자를 5년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국회의원들만 주야장천 만나다 보니 국회 안만 보이더군요. 저도 몰래 그들의 진영논리에 빠져들었습니다. 국회 밖 시민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포획’이 된 거지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경제부로 탈출했습니다. 경제부는 합리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지요.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기업을 출입하면 주로 CEO나 홍보팀 고위관계자를 만납니다. 물건을 사는 소비자는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어쩌다 개인을 만나도 큰손들이 많습니다. 저소득층을 만날 일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경제학자들에게 균형 잡힌 조언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한국의 주류경제학자는 미국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배워온 분들이 많습니다. 2010년대 들어 소득불평등과 분배를 연구한 학자들에게 노벨경제학상을 몰아주고 있는 흐름에도 비켜나 있습니다.

사방이 이렇다 보니, 경제기자를 오래하면 서서히 자본의 논리에 익숙하게 됩니다. ‘포획’된 거죠. 효율은 중요해지고, 규제는 악이 됩니다. 감세는 존중되고, 복지확대는 비난합니다. 경쟁을 통한 부의 쟁취는 당연한 자본주의의 생리로 봅니다. 19세기 영국의 불평등을 연구하던 토머스 맬서스가 〈인구론〉을 통해 “빈부격차는 어쩔 수 없다”며 자연의 섭리로 돌려버린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최근 쏟아진 종합부동산세 기사를 보셨습니까. 종부세 폭탄이라고 보도했길래 들여다보니 서울 강남 3구에 집 2채를 갖고 있는 사례를 들었습니다. 시가만 60억에 달합니다. 고자산가라도 세금을 내는 것은 아깝겠지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조금 부담은 되겠지만, 거리로 쫓겨나지는 않습니다. 갑자기 부과된 것도 아닙니다. 정부가 오랫동안 예고했지만 끝내 다주택을 팔지 않았습니다. 언론이 굳이 스피커가 돼주지 않더라도 알아서 국회에 로비하고, 헌법소원을 낼 수 있는 힘이 있는 분들입니다. 뉴욕타임스가 뉴욕 맨해튼에 다주택을 가진 사람들의 보유세 걱정을 해주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진짜 문제는 집 없는 사람들입니다.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집값에 망연자실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웬만한 곳은 2년 전 매매가가 지금 전셋값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를 보도한 지면은 정말 적습니다. “종부세 많이 내서 괴롭다고? 집 없는 사람은 죽을 맛(국민일보 11월 23일자)”이라는 기사가 고마웠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건보료 월 5만원을 내지 못해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216만세대, 최소 405만명이 있다고 합니다. 옥탑방, 컨테이너, 무허가 주택에 사는 아이들도 수도권에만 22만7000명에 달합니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간경향이 스피커가 되고자 하는 대상들입니다. 저희는 시민들이 부여한 ‘언론의 자유’를 이런 데 쓰겠습니다.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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