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는 일시적' 단어 버렸다..매의 발톱 드는 '파월 2기'(종합)
"테이퍼링 종료 몇달 앞당기는 것 고려"
"인플레 압력 높다..12월 FOMC서 논의"
오미크론 와중에 격렬하게 반응한 시장
커브 평탄화 뚜렷..긴축, 침체 부를수도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인플레이션이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단어에서 물러나기 좋은 시기입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매의 발톱’을 분명하게 치켜들었다. 마치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여겨졌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말을 버리겠다고 처음 선언하면서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변신을 천명했다.
다만 시장은 거칠게 반응했다. 파월 의장이 하필 오미크론 변이 공포가 점증하는 와중에 긴축 가속화 의지를 내보이자, 금융시장은 흔들렸다. 일부에서는 연준의 빠른 긴축이 오히려 경기 침체를 부를 수 있다는 ‘통화정책 실기론’이 스멀스멀 부상하는 기류다.
“테이퍼링 종료 몇달 앞당기는 것 고려”
파월 의장은 30일(현지시간)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연준이 의미하는 점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연준은 그동안 ‘일시적’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면서, 이를 근거로 초완화적인 정책을 펼쳐 왔다.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통화정책성명까지 시장의 예상을 깨고 이 단어를 썼다. 파월 의장이 공개적으로 이를 쓰지 않겠다고 하는 건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꾸겠다는 가장 명확한 신호라는 평가다.
파월 의장은 “우리는 더 높은 인플레이션의 형태로 영구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이 단어를 썼다”며 “사람마다 이를 쓰는 의미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우리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 연장선상에서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 속도를 더 높일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파월 의장은 “현재 미국 경제는 매우 강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은 높다”며 “11월 FOMC에서 발표한 테이퍼링을 몇 달 앞당겨 마무리하는 걸 고려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연준은 11월 FOMC를 통해 11~12월에 한해 채권 매입을 통해 시중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QE) 규모를 월 1200억달러에서 매달 150억달러씩 줄이기로 했다. 그의 언급은 내년 이후 월 150억달러보다 더 많이 매입량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씨티그룹은 월 300억달러로 점쳤다. 씨티그룹의 예상대로라면 내년 3월이면 테이퍼링이 끝나는 셈이다. 이는 곧 기준금리 인상이 앞당겨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파월 의장은 “12월 FOMC 정례회의에서 이를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매파(통화 긴축 선호) 신호를 보낸 건 자칫 시기를 놓치면 물가 폭등세가 손 쓸 수 없이 심화할 수 있는 탓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현재 1년 기대인플레이션율 중간값은 5.7%다. 연준 목표치(2.0%)의 세 배에 달한다.
이뿐만 아니다. 시중 유동성 관리의 핵심인 은행 규제 역시 매파 성향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리처드 코드레이를 차기 연준 은행감독 부의장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드레이가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지명 받고 상원 인사청문회를 거치면 랜달 퀼스 부의장의 뒤를 잇게 된다.
코드레이는 오바마 정부 때인 2012~2017년 금융소비자보호국(CFPB)의 초대 국장을 지냈다. CFPB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신설한 조직이다. 코드레이는 CFPB 재직 당시 은행권을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심사 기준을 강화했고, 심용카드 요율과 수수료에 대한 더 많은 자료 공개를 요구했다. 은행권 규제에 완화적이었던 랜달 퀼스 현 부의장과는 결이 다른 인사다.
이 때문에 차기 부의장으로 지명된 라엘 브레이너드 현 연준 이사와 함께 은행권 대출 창구를 조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파월 2기’의 시작은 다분히 매파적일 수 있다는 의미다.
커브 평탄화 뚜렷…긴축, 침체 부를수도
문제는 연준이 긴축을 천명한 시기다. 하필 오미크론 변이가 세계를 덮치고 있을 때여서, 이날 글로벌 금융시장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을 모아놓은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86% 하락했다.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1.90% 내렸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1.55% 떨어졌다. 월가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 변동성 지수(VIX)는 18.42% 급등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거래일 대비 5.4% 내린 배럴당 66.1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8월 23일(배럴당 65.64달러) 이후 3개월여 만의 최저치다.
뉴욕채권시장은 채권수익률곡선의 평탄화(커브 플래트닝)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준의 긴축 시사에 미국 2년물 국채는 0.06%포인트 상승한 반면, 경기 침체 예상에 10년물 국채는 0.08%포인트 내렸기 때문이다. 미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은 게 자연스러운데, 그 차이가 작아진다는 건 침체의 전조로 받아들여진다.
이날 커브가 누운 건 오미크론 변이 충격이 커질 경우 연준의 가파른 돈줄 조이기가 경기 반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심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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