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마인드]'착한' 스테이크가 그립다

이채린 자유기고가 2021. 12.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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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뉴욕이라면 스테이크이다. 베이글이나 피자, 치즈케이크 등도 유명하지만 오래 숙성시켜 감칠맛을 극대화한 드라이 에이지드(dry-aged) 스테이크야말로 뉴욕의 대표 음식이다. 좋은 고기 공급처나 숙성 기술, 굽는 법이 도제식으로 전수되기에 유명 스테이크집들은 다 아는 사이처럼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한다. 착석해 메뉴판을 받아들고서야 가격을 알 수 있고 스테이크만 서빙하는 사람을 따로 두며 가격도 담합이라도 한 듯 같다. 인기 있는 립아이 스테이크는 팬데믹 전 오랫동안 59달러였는데, 작년 말 69달러가 되었다가 올해 다시 75달러로 올랐다. 27%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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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모든 게 올랐다. 음식점은 양은 줄었는데 가격은 올랐고, 일손 부족으로 서비스도 안 좋아졌건만 전엔 팁을 15, 18, 20% 중에서 골랐다면 이젠 20, 22, 25%에서 선택하란다. 외식하기가 무섭다. 같은 비용으로 장바구니는 훌쩍 가벼워졌다. 2달러 정도였던 갤런당 기름값도 4달러가 넘었다.

1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따르면 작년에 비해 소고기 24%, 가솔린 51%, 중고차는 26% 상승했다. 전체적으로는 6.2% 올랐다. 현실감 없는 공허한 숫자이기는커녕 체감지수는 오히려 더 높다. 10여년 타던 차를 팬데믹 직전 팔려다 4000달러도 못 받는다기에 접었는데, 중고차 품귀라는 지난달 동네 중고사이트에 올린 지 4시간도 안 돼 약 7000달러 현금에 팔았다. 그 와중에도 문의전화는 계속 울려댔다.

이렇게 물가가 오른 것은 1980년대 이후 처음이란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가파른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던 미국은 1980년대 이후 견조한 경제성장 속에 매년 2% 정도의 그야말로 안정적인 물가 상승을 유지해왔다. 베이비붐 세대야 이미 겪어본 일이지만, 급격한 가격 상승을 생전 처음 경험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크게 당황한다.

현재 인플레이션 관련 정책을 둘러싼 진영은 첨예하게 둘로 갈라져 있다. 전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로런스 서머스, 거시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 등은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우려하며 이자율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재무장관 재닛 옐런이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등은 수요가 그리 높지 않고 팬데믹이란 특수 상황과 항만이나 공장의 병목 현상으로 인한 일시적인 상승이라며 머지않아 사그라들 것이란 의견이다. 예상보다 길어지는 물가 상승 속에 크루그먼은 최근 뉴욕타임스 사설에서 “인플레이션 주장파들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니다”라며 지금 이자율을 올리고 노동시장을 경색시키는 정책은 말이 안 된다고 강변했다. 연준 의장 제롬 파월은 오미크론 바이러스 출현이 경제와 인플레이션 전망을 어둡게 한다고 시인했다. 이미 올라간 가격이 다시 떨어질 리 없건만 마음 같아선 제발 크루그먼의 주장이 맞아 더 많이 오르지만 않았으면 싶다.

그런 와중에도 2년 만에 처음 11월 초부터 유럽 관광객을 맞이한 뉴욕 5번가에는 잘 차려입은 관광객들의 설레는 표정과 외국어들이 넘실거린다. 벌써 캐럴이 흥겨운 가운데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한 스테이크집들도 성업 중이다. 한편 뉴욕주는 미국 주 최초로 12월4일부터 새 변이에 대비한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팬데믹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채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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