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미칼럼] 이 후보님, 탄소세는요?
납세자는 안중에 없는 '세금 정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선거에서 세금 공약으로 재미를 본 경우는 없다. 후보들이 돈을 풀겠다는 약속을 쏟아내면서도 재원 논의는 뒷전으로 미루는 이유다. 전 국민에 기본소득을 주겠다고 공약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재원 방안의 하나로 발표한 국토보유세(기본소득 토지세)를 사실상 거둬들였다. 그제 채널A 인터뷰에서 “국민들이 반대하면 안 한다”고 했는데 새로운 세금을 만드는 데 찬성할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증세는 국민들이 반대하면 할 수 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 후보가 기본소득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면서 내심 세금 논쟁이 뜨거워지길 기대했다. 1인당 연간 25만원으로 시작해 임기 내 연간 100만원을 전 국민에 지급하고, 청년(19∼29세)에 연간 100만원을 별도 지급한다는 것이 공약의 골자다. 재정 구조 개혁, 예산 절감 등을 통해 25조원 이상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데 역대 정부에서 모두 실패한 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예측하지 못한 수요가 늘어나는 경우는 많아도 기존에 책정된 예산을 줄이기는 힘들다. 허리 띠를 졸라매기 어려우면 어디서든 돈을 끌어와야 한다. 이 후보가 내놓은 답이 국토보유세와 탄소세다.
모든 토지에 부과하는 국토세는 최근 고지서 발송으로 다시 논란을 빚는 종합부동산세를 대체하는 세금이다. 이 후보 측은 토지세 대상이 종부세 대상보다 많긴 하지만 기본소득으로 돌려받기 때문에 국민 90% 이상은 ‘수혜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보 성향의 재정학자 우석진 명지대 교수조차 언론 인터뷰에서 “국토보유세는 19세기 이론이 토대여서 지금 관점에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농지나 임야, 종중 소유의 땅, 공장 부지 등을 어떻게 과세할 것이냐는 논란이 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기업, 개인에 세금을 매기는 탄소세도 짚어야 할 대목이 많다. 탄소중립을 위해 거둬들이는 탄소세를 산업구조 개편이나 재생에너지 기술 육성 등에 써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은 차치하더라도 조세 대상부터 모호하다. 이 후보는 탄소부담금을 거둬 국민에 일부 배당하는 스위스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 스위스는 난방용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기업, 개인에 탄소부담금을 부과하는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에 참여하거나 자발적 감축 계획을 제출한 기업들은 면제된다. 현재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차 등 400개 넘는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에 참여 중이다. 이런 기업을 타깃으로 삼는다면 이중과세 논란이 불가피하다.
국가 정책을 위해 증세가 필요할 경우 국민을 설득하는 게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다. 이 후보는 페이스북에 “토지보유 상위 10%에 못 들면서 손해볼까봐 기본소득 토지세를 반대하는 것은 악성 언론과 부패 정치 세력에 놀아나는 바보짓”이라고 썼다. 국민을 10 대 90으로 편가르기한 것도 모자라 토지세에 반대하는 이들을 조롱했다. 그래 놓고 “국민이 반대하면 못한다”고 발을 뺀다. 납세자는 안중에 없는 전형적인 ‘세금 정치’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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