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코로나, 급증과 급감 사이
지종익 KBS 도쿄특파원
도쿄올림픽이 열리고 있던 지난 여름. 당시만 해도 도쿄에서는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수천 명씩 발생했다. 자가격리 중이던 신주쿠의 호텔 앞 거리는 ‘확진자가 괜히 많은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뤘다. 비좁은 가게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새벽까지 음주를 즐기는 일본인들. 올림픽 취재를 위해 일본에 들어온 유럽의 외신 기자들은 신기한 듯 그들의 ‘일탈’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행동하던 사람들이었지만 오히려 ‘노마스크’가 쉽게 눈에 띄었다. 문을 연 술집을 찾지 못한 넥타이부대는 거리의 주차장에 도열해 캔맥주 회식을 했다. 정부나 언론이 전하는 긴급사태 분위기와 번화가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일본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일찌감치 신규 입국자를 제한하는 강력한 쇄국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자주격리’의 감시망을 뚫고 외출했다는 경험담을 인터넷에 공유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엄격한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말도, 매뉴얼도 필요 없는 일본 사회 특유의 ‘공기’가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공기를 읽는 데 체화된 이들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식당에서 ‘혼밥’조차도 하지 않았다. 집단의 질서와 개인의 자유 사이의 간극이 일본 코로나 급증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넉 달. 15개월 만에 사망자 0명을 찍더니, 도쿄의 일일확진자 수는 한 자릿수까지 내려왔다. 매일 지역별 확진자 수를 집계한 일본 지도에는 두 자릿수 지역보다 한 자릿수 지역이 많고, 한 자릿수보다는 0인 곳이 더 많다.
급증의 원인은 짐작이 가능했지만 급감의 원인은 알 수가 없었다. 해외 국가들의 돌파 감염 사례를 봤을 때, 일본의 백신 접종률이 높아졌다는 것만으로는 명쾌하게 설명이 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추측만 할 뿐 자신 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확진자 급감과 함께 긴 시간 이어질 것만 같던 긴급사태 조치도 전면 해제되고, 사실상 ‘위드 코로나’가 시작됐다. 급감의 원인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그 중 하나는 ‘집단면역설’이다. 앞서 말했듯, 지난여름만 해도 도쿄 번화가를 거니는 사람들의 행동은 자유로워 보였다. 일본에서 특히 젊은 층의 확진자가 많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뷰에 응한 일본의 전문가는 실제 젊은 층의 확진자는 확인된 것보다 적어도 3~4배가량은 많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확진된 상태에서 별다른 증상 없이 지나갔고, 면역력만 갖게 된 이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동시에 일본 정부는 2~30대를 위한 백신 접종 센터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백신 접종을 권했다. ‘어려서 아무런 관심도 없을 것이다’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청년들은 백신을 맞겠다고 새벽부터 줄을 섰고, 준비한 백신 물량이 일찌감치 동이 나기까지 했다. 젊은 층의 무증상 감염 확산과 백신 접종 확대. 이 둘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형성된 집단면역이 지금 일본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듯한 얘기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인터뷰에 응한 다른 한 명의 연구자는 심리적인 요인을 짚었다. 일본에서는 의료 체제의 붕괴가 현실로 나타났다. 확진자가 자택 대기 중에 사망하기도 했고, 코로나에 걸린 임산부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신생아가 숨지는 일도 있었다. 출퇴근길 도쿄의 지옥철에 오르내리며 겁을 집어먹고 이따금 들숨을 참아내야할 만큼 남 얘기가 아니었다. ‘내가 혹시 지금 감염된다면 치료를 못 받는 건 아닐까?’ 연구자는 사람들에게 이런 심리가 작용하면서 효과로 나타났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데이터로 확인될 정도까지 도심의 인파가 줄어든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공포감에 어떤 식으로든 개인 수준의 감염 대책을 철저히 했을 것이라고 봤다. 의료 붕괴에 따른 공포심이 ‘리스크 회피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일본의 확진자 급감 원인과 관련해서는, 이 밖에도 변이를 거듭한 바이러스의 자멸, 강력한 입국 제한과 백신의 효과, 적은 검사량으로 인한 확진자 미확인 등 다양한 설이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급증의 원인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급감이 미스터리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급증 당시보다는 최근의 ‘급감’에 물음표를 던지는 이가 더 많다. 그리고 어떤 전문가들은 다시 아리송한 일본의 ‘질서’를 원인으로 꺼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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