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은 메타버스가 아니다 [김학균의 금융의 속살]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2021. 11. 3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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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 증시는 사실상 올해 내내 조정세를 나타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뜀박질하듯 달려온 종합주가지수는 올 1월에 고점을 기록한 이후 줄곧 횡보세이다.

경기선행지수의 하강이 보여주는 향후 경기 둔화 가능성, 주요 중앙은행들의 긴축 기조 강화 등이 주식시장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 와중에도 화려한 시세를 분출하는 종목들이 있다. 주로 성장에 대한 기대가 투영되는 종목들인데, 요즘은 메타버스 관련주들이 이런 흐름을 대표하고 있다.

메타버스의 부상은 매우 상징적 현상이다. 주식시장 참여자들은 늘 새로운 기술에 열광해왔지만, 메타버스 열풍은 아바타가 들어간 ‘가상의 공간’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가상의 공간’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자동차와 컴퓨터, 스마트폰 등과 같은 위대한 발명품들은 물리적 실체가 있고, 현실의 행위에 기반하고 있지만 메타버스는 전혀 다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허구와 실재,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어쩌면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자본이 가상의 공간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도 새로운 기술의 발명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2차 산업혁명은 전기,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발명품이 있었지만, 4차 산업혁명은 기존 기술의 조합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구글과 아마존, 메타(구 페이스북)와 같은 혁신기업들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수요를 새로이 창출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아마존이 보여주고 있는 위대한 성과의 그림자는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퇴출이었고, 광고시장을 장악한 구글과 메타의 부상은 광고시장의 강자였던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 급감으로 귀결됐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면서 경제의 총량적 파이를 키웠던 기존의 기술혁명과 4차 산업혁명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효율을 극한으로 높인 위너가 비효율적인 루저의 몫을 빼앗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제로섬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 증시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 주도로 사상 유례없는 강세장을 구가하고 있다.

S&P500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3월 이후 줄곧 강세를 나타내면서 153개월 동안, 595%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증시 120년 역사에서 상승률과 상승기간 모두 압도적인 1위의 기록이다. 직전의 상승률 최고 기록은 대공황 직전 자본주의에 대한 낙관론이 극에 달했던 재즈시대(1921~1929년)의 497%였고, 최장 기간 상승은 사회주의 블록 붕괴에 따른 세계화의 진전과 미국 주도의 정보기술(IT) 혁신이 있었던 1990년대(1990~2000년)의 113개월이었다.

주식시장은 최고의 활황이었지만, 경제 총량의 증가 속도는 매우 부진했다. 2009년 이후 연율화한 미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1.6%에 불과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부진한 성장률이다. 자본주의의 장기 침체기로 불리는 1970년에도 미국의 GDP는 실질 기준 연평균 3.2% 성장했다.

경제 전반의 성장이 둔화되면 투자자들은 ‘성장주’에 높은 프리미엄을 부여한다. 저성장 국면에서는 성장에 대한 기대가 투영될 수 있는 일부 산업이나 기업의 희소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 산업의 성장과 개별 기업의 성장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늘 고려해야 한다.

20여년 전 닷컴 버블 국면에서 투자자들은 ‘인터넷에서 소통하고,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며, 상거래도 하는 세상’을 꿈꾸며 당대의 성장주인 닷컴주식을 매수했을 것이다. 투자자들의 이런 판단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요즘 우리가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닷컴 버블 국면에서 각광을 받았던 기업들 상당수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상당수 기업이 파산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생태계의 최종적인 승자로 볼 수 있는 구글과 네이버는 닷컴 버블 국면에서 상장돼 있지도 않았던 종목들이다.

세상이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현재 존재하는 기업들이 그 변화의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옥석을 가리라는 진부한 조언은 하고 싶지 않다. 성장 산업에서 옥석을 가리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시세에 편승하더라도 애초부터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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