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당대표의 파업
[경향신문]
2016년 4·13 총선을 앞두고 후보 등록이 시작된 3월24일, 여당이던 새누리당의 대표가 최고위원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낙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5개 지역구 후보의 공천장에 대표 직인을 찍지 않는, 사실상의 ‘파업’이었다. 김무성 대표는 부산 영도다리로 내려가 “정치인은 오직 국민만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이름이 붙은 사건이다. 이때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친박 최고위원들이 김 대표에게 친박 후보의 공천을 압박하면서 친박과 비박 간 공천 갈등이 최고조로 다다랐다. 압승을 기대한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예상 밖 패배를 기록했다.
당대표는 당을 대표하며 당무를 통할한다. 이렇게 막강한 힘을 가진 당대표도 자신의 권한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가 당무 우선권을 행사할 때가 대표적이다.
대선을 99일 앞둔 30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공개 일정을 취소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전날 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글을 남긴 이후의 일이다. 이 대표는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선 후보가 세종시 일정 동행 계획을 사전에 조율하지 않은 데 대해 “황당하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당대표 의견을 제대로 묻지 않고 결정한다는 ‘이준석 패싱’을 언급한 것이다. 윤 후보는 이 대표가 반대한 이수정 경기대 교수 영입을 강행해 둘 사이 갈등이 예고된 바 있다. 윤 후보는 “(나는) 후보로서 내 역할을 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한 중진 의원은 이 사태를 놓고 대선 후보는 주연이고 당대표는 조연이라고 비유했다. 최근 윤 후보의 ‘마이 웨이’가 시작되면서 대표의 조연 역할은 크게 줄어들었다.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기에도 바쁜 정당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영입을 놓고 며칠을 흘려보내더니, 이제는 당대표와 대선 후보가 갈등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무대 위의 주연이든 조연이든 오로지 관객을 위해 존재한다. ‘정치인은 오직 국민만 두려워해야 한다’는 김무성 전 대표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권한 다툼만 하는 정당에서 어떻게 자기 당 대선 후보를 찍어달라고 호소할 것인가.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사설] 이재명 선거법 1심 ‘당선 무효형’, 현실이 된 야당의 사법리스크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드라마인가, 공연인가…안방의 눈과 귀 사로잡은 ‘정년이’
- 중학생 시절 축구부 후배 다치게 했다가···성인 돼 형사처벌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