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쌓인 눈 누가 치워야 하나.. 낙상사고시 처벌은? [법잇슈]

이정한 2021. 11. 3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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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쌓인 눈 '건물주'가 치워야
제설 조례, 강제성은 없는 권고사항
낙상사고 생겼다면 손해배상 책임질 수도
집주인 제설과 통행자 주의 모두 중요
사진=연합뉴스
# 2016년 2월 A씨는 골프장에서 티샷하고 이동로를 따라 걸어가던 중 얼어붙은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이 사고로 A씨는 골절상 등을 입었다. 이에 A씨는 골프장 운영 업체가 골프장에 내린 눈을 제때 치우지 않아 사고 책임이 있다며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업체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겨울철 대표적인 자연재해는 눈이다. 눈이 온 뒤 도로에 쌓인 눈을 빠르게 치우지 않으면 눈이 얼어붙어 도로 위 교통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차량뿐만 아니라 주택가 이면도로를 다니는 보행자에게도 빙판길은 위협이 된다. 앞선 A씨의 사례처럼 ‘눈길 사고’를 당하고 시설물 관리자나 해당 도로 앞 건물 소유주 등과 법적 다툼을 벌이는 일도 적지 않다.

이 경우에는 ‘누가’ 쌓인 눈을 치워야 하는지, ‘어느 정도’까지 안전이 보장돼야 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내 집 앞 눈은 내가 치워야

차도에 내린 눈을 치우는 데는 정부나 지자체의 인력과 장비가 투입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은 국가와 지자체가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재산을 보호할 의무를 명시한다. 폭설이 내리면 각 지자체에서 발 빠르게 제설 작업에 나서는 배경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행정력이 ‘내 집 앞 도로’까지 전부 닿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재난안전법 제5조는 ‘국민의 책무’도 함께 규정한다. 여기에는 국민이 자기가 소유하거나 사용하는 건물·시설 등에서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자연재해대책법 제27조(건축물관리자의 제설 책임)는 “건축물의 소유자·점유자 또는 관리자로서 그 건축물에 대한 관리 책임이 있는 자는 관리하고 있는 건축물 주변의 △보도(步道) △이면도로 △보행자 전용도로 △시설물의 지붕에 대한 제설·제빙 작업을 해야 한다”고 정한다.
사진=연합뉴스
앞선 사례처럼 골프장 안과 주변의 도로는 골프장 운영업체가, 집 앞 도로나 지붕에 쌓인 눈은 집주인 혹은 거주자가 치워야 한다는 얘기다.

◆안 치워도 처벌은 없어

구체적인 제설·제빙 범위와 책임 등은 각 지자체 조례로 정하고 있다. 이른바 ‘내 집 앞 눈 치우기 조례’(건축물관리자의 제설·제빙에 관한 조례)인데, 지자체별 내용 차이는 크지 않다. 예컨대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주간에 눈이 내렸다면 눈이 그치고 4시간 이내, 야간은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작업을 마쳐야 한다. 다만 하루에 10cm 이상의 눈이 왔다면 24시간으로 제설·제빙 기한이 늘어난다.

제설·제빙 책임자는 소유자가 건물에 거주하는 경우 소유자, 이어 점유자(세입자)·관리자 순이다. 소유자가 건물에 살지 않을 시에는 점유자(세입자)·관리자, 소유자 순으로 바뀐다. 쉽게 말해 ‘건물주’가 해당 건물에 살면 건물주 책임이 앞서고, 아니라면 세입자나 관리자 책임이 먼저라는 것이다.

집 앞 눈을 치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을 받을까.

그렇진 않다. 관련 법과 조례에 벌칙 규정이 없어서 눈을 치우지 않았더라도 과태료나 벌금을 부과하지는 않는다. 2010년 당시 소방방재청(현 소방청)은 눈을 안 치우면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내게 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비난 여론에 무산됐다. 눈을 안 치웠다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과한 조처라는 여론이 우세해서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제설·제빙과 관련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사례가 꽤 많다. 미국은 주에 따라 25달러(약 3만원)에서 500달러(60만원), 영국은 최대 2000파운드(317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곳도 있다. 캐나다 토론토 시도 105달러(10만원), 독일은 몇몇 주에서 최대 500유로(67만원)에서 최대 수천유로까지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진=연합뉴스
◆눈 치우지 않아 낙상사고 당하면 손배 책임질 수도

우리나라에서 집 앞 눈을 안 치웠다고 과태료를 내진 않지만, 앞선 사례처럼 눈을 치우지 않아 보행자 낙상사고 등 사고가 생겼을 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자연현상의 특성을 고려해 우리 법원은 제설·제빙 의무에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는다. 

2018년 전북의 한 아파트의 도로에서 넘어진 B씨는 제빙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해당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장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2000년 4월 대법원 판단을 인용해 “강설과 결빙은 자연현상으로 예측하기 어려워 완전무결할 정도로 고도의 안전성을 요구할 수 없다”며 “통행자의 상식적인 이용방법을 기대해 상대적인 안전성을 갖추는 거로 족하다”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제설·제빙이면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앞선 첫 사례에서도 법원은 A씨의 ‘주시 태만’을 지적하며 골프장 업체의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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