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배우.. 다양한 경험했지만 소설 쓰며 비로소 만족 얻었죠"

김용출 2021. 11. 3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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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저자 아룬다티 로이 방한
첫 소설로 부커상 수상
40여개 언어로 번역, 출간
600만부 팔린 베스트셀러로
이호철문학상 수상위해 방한
"큰 것을 이루는 작은 것들
그 속에 깃든 신들을 믿어"
두 번째 소설이후 5년 지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시대
새 소설 계획 아직은 없어"
건축설계를 공부했을 때도,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연기를 할 때도 만족할 수 없었다. 경험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세계와 우주,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 충분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만족할 수 없었어요. 소설을 통해 표현이 가능할 것 같았지요. 무엇을 생각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소설이 가장 높은 예술형태라는 걸 깨달았어요.”

인도의 남부 케랄라주 아예메넴에서 성장한 작가 수잔나 아룬다티 로이는, 글쓰기를 공부한 뒤 1992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 구조를 만드는 데 무려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하여 그의 첫 장편소설 ‘작은 것들의 신(사진)’이 탄생했다.

그는 작품을 완성했지만, 그 다음엔 무엇을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고민하다가 출판사와 관계가 있는 친구에게 글을 넘겼다. 친구는 수많은 출판사 에이전트들에게 그의 글을 보냈고, 친구의 출판사에 전화가 쏟아졌다. 그 가운데 한 명이 런던의 출판사 하퍼콜린스의 문학담당 편집자 데이비드 고드윈이었다.

“로이, (다른 출판사와 출판 계약에) 사인하지 말고 내가 인도에 갈 때까지 기다려줘. 내가 곧 갈 테니까.”

고드윈은 곧장 인도로 날아왔고, 로이를 만나자마자 출판 계약을 체결했다. 무려 160만달러라는 기록적인 선인세를 지불하고서.

“고드윈은 인도를 사랑하지만 인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지요. 그때는 마치 저의 팔에 헤로인을 꽂아 넣는 것 같았어요. 책을 계약하고 출간하는 과정이 마치 매직 같았죠.”
‘긴급한 개입’을 위해 논픽션을 쓰는 인도 작가 로이는 “픽션과 논픽션은 쓰는 주제나 대상이 다른 것이 아니고, 형식적인 차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스토리로 이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은 픽션이고, 어떤 면에선 소설이야말로 진실을 말하는 가장 최상의 형식”이라고 말한다.
1997년, 로이는 거대한 전통과 관습에 희생당한 이들의 사랑과 작은 것들을 그린 소설 ‘작은 것들의 신’(한국어 번역판 문학동네)을 출간했다. 소설은 그해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인도 여성 작가로서 첫 부커상 수상. 책은 출간 이후 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고, 6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소설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뒤 사회운동가로도 맹활약 중인 그는 지난해 제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그의 문학 세계에 대해 “인도 역사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소설적으로 담아내는 뛰어난 문학적 능력”과 “계급적, 종교적 분열과 성적 소수자의 문제,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아우르는 폭넓은 시야, 역사적 상처를 모성의 품으로 끌어안는 유연한 젠더 의식” 등을 높게 평가했다.

수상식은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1년여 미뤄졌다가 지난 25일에야 뒤늦게 열렸다. 수상식을 위해 멀리 인도에서 한국을 찾은 로이를 만났다. 그는 “인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글을 쓰는 사람인데, 지난 2년 고립의 시기에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힘들었다”며 “한국을 찾게 되면서 고립이 끝나는 계기가 됐다. 우리가 다시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해야 할 때”라고 소회를 밝혔다. 다음은 서울 프레스클럽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및 서울 은평구 한문화체험관에서 이뤄진 인터뷰, 그의 작품 등을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작은 것들의 신’은 이란성 쌍둥이 남매인 에스타와 라헬이 거대한 전통과 관습, 권력과 인간들의 욕망에 의해 좌절된 어머니 암무의 삶과 사랑을 회고하는 형식의 작품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차농장 지배인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암무는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고향 아예메넴으로 돌아온다. 암무는 불가촉천민인 목수 벨루타와 사랑에 빠지지만, 거대한 것들에 의해 짓이겨지고 만다. 벨루타는 누명을 쓰고 경찰의 구타로 숨지고, 암무 역시 마을을 떠난 뒤 쓸쓸히 죽는다.

―‘작은 것들의 신’의 쌍둥이 딸 라헬과 그의 어머니 암무의 삶은 실제의 삶과 가공의 상상이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는 것 같은데.

“두 종류의 액체를 섞어서 칵테일을 만들 때 우리는 특정 액체를 잘라서 무어라 말하기 어렵듯이, 어떤 것이 기억이고 상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제가 나고 자랐던 경험을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실제와 상상을 명확하기 구분하긴 어렵다.”

―왜 작은 것들에 주목했는가, 작은 것들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큰 얘기 같은데.

“많은 종교에는 작은 것들의 신이 다 존재한다. 작은 것들은 작은 것이 아닐 수 있고, 가장 큰 것과 연결될 수도 있다. 거미 한 마리가 물결을 일으켜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큰 것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구성되는 것인지 모른다. 저는 건축학을 전공해서 더 그럴지도 모르는데, 글을 쓸 때 어떤 문제에 대해서 개념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아주 작은 것을 바라보려고 하고, 신은 작은 것들 속에 있다는 말도 있다.”

로이는 1961년 인도 메갈라야주 실롱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외가인 남부 케랄라주 아예메넴에서 자랐다. 1977년 델리로 이주해 건축설계학교에 입학했고, 1984년 국립도시계획연구소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영화감독 프라디프 크리셴을 만났고, 크리셴과 함께 영화 ‘매시 사히브’ 등을 찍었다. 그는 1997년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그해 부커상을 수상하며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작품에 대해 “눈부신 첫 소설” “비범한, 도덕적으로 고단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상찬했다.

그는 1998년 인도 정부의 핵실험을 통렬하게 비판한 첫 평론 ‘상상력의 종말’을 발표하며 사회운동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이래 논픽션 ‘생존의 비용’(1999),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2004),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2009),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2014), ‘아자디: 자유, 독재, 허구’(2020) 등을 펴내며 세계를 향해 거침없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인도 정부의 핵실험과 대형댐 건설, 힌두 극단주의 등의 비판부터 카슈미르 독립의 공공연한 지지까지, 나아가 신자유주의와 미국의 일방통행도. 그에겐 ‘반민족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음에도.

2017년, 로이는 20년 만에 두 번째 장편소설 ‘지복의 성자들’을 출간했다. 작품은 성별이 모호한 성소수자의 시각으로 2002년 힌두교들이 수천명의 무슬림을 학살한 구자라트 폭동을 다루면서 종교 갈등과 역사적 분열, 빈부 격차, 카스트 제도 등 인도 역사의 핵심적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작가이자 활동가인 그는 라난재단의 문화자유상, 시드니평화상, 노먼 메일러 집필상 등을 수상했고, 2014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루의 일상은 어떤지.

“현재 나는 습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루틴이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어떤 날은 여행하기도 하고, 고릴라도 보고 다니는 등 매일이 다른 날이다. 루틴이라고 하면, 항상 뭔가를 생각하고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것이다.”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인도의 상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10년 뒤의 모습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감옥에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나의 친구들이 현재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 끔찍한 정부가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런 것을 생각하지 10년 뒤 나의 모습을 생각하긴 지금 어렵다.”

로이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자신이 독립을 지지한 카슈미르가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거론하면서 아직 세 번째 소설을 집필할 계획이 없다고 고백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선 어떤 새로운 세계가 머릿속에 자라나야 하는데,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현재는 어렵다”며.

세 번째 소설을 아직 집필할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작가,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어렵다는 로이. 세상은 아직도 그의 ‘긴급한 개입’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는 언제쯤 다시 소설의 세계로, 그리하여 10년 뒤의 모습을 스스로 그릴 수 있을까. 몇 조각의 슬픔을 담아서 자판을 꾹꾹 누른다.

글·사진=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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