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신산업의 비용

김경락 2021. 11. 3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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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이 등장해 시장이 저만치 달려가면 규제 지체 현상이 나타난다.

시장의 일탈과 실패를 살펴야 하는 규제당국으로선 시장은 물론 기술(!)을 이해해야 하고, 현행법으로도 규율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여야가 합심해 결정한 가상자산 과세 연기는 신산업 등장에 따른 비용이 비단 당국이 시장을 재빨리 뒤쫓지 못해서거나 새 먹거리를 놓고 벌어지는 규제당국 간 쟁투에서 비롯된 것 외에도 성격이 다른 또 다른 종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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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김경락 | 산업팀장

신기술이 등장해 시장이 저만치 달려가면 규제 지체 현상이 나타난다. 시장의 일탈과 실패를 살펴야 하는 규제당국으로선 시장은 물론 기술(!)을 이해해야 하고, 현행법으로도 규율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사각지대가 발견되면 새로 규율을 짜야 하니 규제 지체에 뒤따르는 부작용·일탈의 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질 수도 있다. 신기술·신산업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할 때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다.

지난 9월부터 <한겨레>는 공공이 확보한 얼굴 정보 등 개인정보가 인공지능·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민간 업체에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일탈·위법 행위를 집중 보도했다. 몇가지만 꼽자면, 민간 개발업체와 ‘위탁 계약’을 맺는 편법을 동원해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넘기는 데 법무부가 앞장선 사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없는 민간 업체의 테스트 공간이라고 강조해온 세이프티 존(실증 랩)이 뻥 뚫린 사실 등을 전했다.

이런 ‘사고’는 중국 등에 뒤처진 한국의 인공지능·알고리즘 산업을 빨리 키우려는 당국의 조바심과 이런 정서를 읽은 업체의 돈벌이 욕심이 한데 버무려진 결과다. 실제 사고가 터진 사업들은 2015~2019년에 실체는 모호하지만 바람은 인 ‘4차 산업혁명’과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비대면 기술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배경으로 정부가 길어낸 ‘디지털 뉴딜’ 예산 프로젝트에 올라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겨레> 보도 뒤에야 정부는 사고 수습과 점검에 나서고 있다. ‘과속’을 인정한 것이다.

신산업의 등장은 규제당국엔 새로운 먹거리 출현이란 의미도 갖는다. 구글·애플과 같은, 과점적 앱 마켓 사업자들이 내놓은 ‘인 앱 결제’ 강제 요구에 대한 지난 1년여 동안의 정부 각 부처 간, 또 관련 국회 상임위원회 간 각축전은 이런 맥락에서 접근하기 좋은 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전통 경쟁법을 토대로 앱 마켓 사업자 규율에 나서자, 통신사업자 감독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그건 내 영역인데’라며 쌍심지를 켜고 나섰다. 어찌나 급했던지 정부 내 숙의는 건너뛰고 국회 과방위 소속 의원들이 앞다퉈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온라인 플랫폼’ 관련 규제 법안을 놓고 벌어진 정부 내 신경전도 이와 비근한 예다. 공정위가 정부 내 논의를 거쳐 정부안으로 내놓은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제정안)과 ‘전자상거래법’(개정안)은 입법 예고 후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처리되지 않고 있다. 방통위는 이번에도 스스로 법안을 내지 않고 의원 입법(온라인플랫폼이용자보호법)에 기댔다. 새 먹거리를 겨냥한 쟁투는 조직 보위와도 관련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조직의 규모는 감독 대상 시장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

여야가 합심해 결정한 가상자산 과세 연기는 신산업 등장에 따른 비용이 비단 당국이 시장을 재빨리 뒤쫓지 못해서거나 새 먹거리를 놓고 벌어지는 규제당국 간 쟁투에서 비롯된 것 외에도 성격이 다른 또 다른 종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잠재 선출 권력은 표가 먼저인 터라 조세 형평이나 정의란 가치는 잔소리 취급하기 십상이다. 증세는 가급적 피하고 감세엔 적극적인 선출 권력의 습성은 신산업을 만나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선출 권력이 신산업 분야 상장사가 분식회계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가급적 조용히 처리되길 바라는 것도 시장에 미칠 영향이나 지배주주에 핍박받는 소액 주주 권익 보호라는 고매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개미 투자자가 모인 시장을 표밭으로 여겨서다. 선거 중의 선거인 대선을 앞두고 이런 경향은 더 짙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곱절로 불고 있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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