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재난을 어찌할 것인가
[세상읽기]
[세상읽기] 이원재 | LAB2050 대표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아이는 바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고, 검사를 받고 집에서 기다리라는 통보가 부모에게 왔다. 온라인학습의 긴 파고를 넘어, 간신히 등교를 시작한 시점이었다. 아이는 홀로 온라인수업과 식사를 챙기며 집을 지켜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돌봄 공백이었다.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학교 전체가 문제가 됐다. 동네 보건소에는 부모의 손을 잡은 아이들이 줄을 섰다. 부모들은 일터에 양해를 구하고 휴가를 내느라, 또는 임시로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며 몇 주를 보내야 했다.
‘위드 코로나’ 정책이 시작되었지만 아이 돌봄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이 문을 열고 아이들을 받기 시작했지만, 감염자가 발생하면 바로 아이들을 돌려보낸다. 학생들은 다시 온라인학습으로 되돌아가야 하고, 유아들은 아예 대책 없이 집에 보내진다. 모두 부모의 손길을 기다리는 조처다. 많은 아이들이 일정 기간 자가격리 통보를 받는데, 자가격리 지침을 제대로 지키려면 부모가 온전히 아이와 24시간을 보내며 챙겨줘야 한다.
문제는 이런 일이 언제 생길지 모르고, 또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들쭉날쭉 돌봄 재난에, 기약 없는 불안만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큰 우리 사회의 격차를 더욱 키운다는 점이다.
돌봄 재난은 기업 간 격차를 키운다. 돌봄을 위해 휴가를 낼 수 있거나, 재택근무라도 할 수 있는 직장이라면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돌봄을 위한 휴가나 육아를 겸한 재택근무가 가능한 곳은 형편이 좋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한정된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자영업자들은 잠깐 시간을 내어 자리를 비우기도 어려운 경우가 부지기수다. 5인 이하 사업장이라면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불안정한 일자리일수록 돌봄 공백은 더 큰 재난으로 다가온다.
너그러운 사업주가 있어 돌봄 휴가 또는 느슨한 재택근무가 가능해도 문제는 이어진다. 사업체 자체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문제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은 필수인력 한명만 빠져도 당장 생산과 매출에 차질을 빚기 쉽다. 한 아이의 학교에서 한명의 친구가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수많은 직장의 생산과 매출이 줄고 그 직장들의 임직원들 모두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성별 간 격차도 커질 것이다. 대부분 가정에서 돌봄 책임은 여성에게 우선 지워진다. 여성의 임금은 평균적으로 남성의 임금보다 낮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이후 기혼 여성의 일자리 타격이 가장 큰 형편이다. 그 시기를 힘들게 버티고 ‘위드 코로나’까지 일자리를 지켜온 여성들마저 돌봄 재난 탓에 노동시장을 이탈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기업들이 기혼 여성의 채용을 꺼리게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소득 계층 간 돌봄 격차가 가장 클 수 있다. 사교육 비용을 감당할 수 있고 외벌이로 생활비 충당이 가능한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은 처지가 아주 다르다. 가족관계와 정서적 격차마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의 ‘2021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고소득층은 가족관계가 좋아졌고 저소득층은 나빠졌다. 대가족이 사라진 시대, 가족관계라면 부부 관계 아니면 부모-자녀 관계다. 달라진 관계는 이미 아이들의 정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을 텐데, 돌봄 공백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어른들은 ‘위드 코로나’의 혜택과 ‘위드아웃 코로나’의 혜택이 겹쳐진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봉쇄와 격리의 일상이 불쑥불쑥 닥쳐온다. 아이들이 맞닥뜨린 일상은 여성에게, 저소득층에게, 중소기업에, 자영업자에게 ‘돌봄 재난’으로 다가온다.
해법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아동이 돌봄받을 권리를 노동자나 자영업자의 생존권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백신 접종이나 학교의 방역 지침도 이런 권리를 중심으로 다시 정리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학교가 더 유연해져야 한다.
돌봄은 교육이 아니라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는 학교의 역할 중 상당 부분이 돌봄이고,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냈다. 온라인 시대 감염병은 역설적으로 오프라인 교육의 가치를 다시 주목받게 만들었다. 이럴 때 교육이 돌봄을 품어 그 가치를 더욱 높이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공교육의 가치를 다시 조명하는 기획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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