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 수모' 이준석 모든 일정 취소..尹선대위 '자중지란'
李대표, 尹측과 갈등에 돌연 '잠적'
尹 "권성동에게 李 만나보라 했다"
2030 표심잡기 위해 반드시 필요
당내 "尹이 직접 수습 나설 듯"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내외 일정을 무더기 취소하면서 칩거에 들어갔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인선 과정에서 발생한 내부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대표의 칩거가 길어질 경우 12월 6일로 예정된 윤석열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준석, 무기한 일정 취소
국민의힘 당대표실 관계자는 30일 “금일 이후 이 대표의 모든 공식 일정은 취소됐다”고 전했다. 12월 2일로 예정된 선대위 회의 등 이번주 일정은 모두 불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을 100일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선관위 업무와 당무를 모두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하는 이 대표 사퇴설과 관련해서는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갑작스러운 잠적에 정치권에서는 그간 선대위 인선 과정에서 윤 후보 측과의 갈등이 폭발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 대표는 전날 SNS에 “그렇다면 여기까지다”라는 의미 심장한 글을 올린 뒤 눈웃음 이모티콘에 영어 알파벳 소문자 피(p)를 붙인 ‘^^p’라는 메시지를 연이어 올렸다. 정치권에서는 ‘p’는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하는 모양을 연상케 한다며 이는 상대에 대한 야유의 뜻을 전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 대표와 윤 후보 측은 그간 선대위 인선 과정에서 잦은 마찰을 빚었다. 특히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총괄선대위원장 임명을 두고 양측의 의견이 갈렸다. 이 대표는 김 전 위원장 위주의 선대위를 구상한 반면 윤 후보 측은 김종인·김병준·김한길 등 ‘3김(金) 체제’를 밀어붙였다. 이 가운데 이 대표는 윤 후보 측에서 익명의 관계자를 앞세워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수차례 경고 메시지를 날리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최근 윤 후보 측의 ‘이준석 패싱’이 거듭되면서 이 대표가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선대위는 지난 29일 이 대표와의 사전 교감 없이 윤 후보와의 동반 충청권 방문 일정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또 이 대표가 공개적으로 반대해 온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尹, 李 대표 달래기 나설까
윤 후보는 이날 충북 청주에 있는 2차전지 기업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대표와 연락했냐’는 질문에 “오늘 일정이 아침부터 바빴다”며 “(권성동) 사무총장에게 이유 등을 파악하고 만나 보라고 했다”고 답했다. 최근 선대위 내부 잡음의 이유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다”며 “저는 후보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윤 후보가 이 대표 달래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인 2030세대 등 청년층 표심을 잡기 위해 이 대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태경 의원은 “이번 대선에서 우리 당의 정치혁신과 청년정치를 상징하는 이 대표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김태호 의원도 “당 대표까지 설 자리를 잃으면 대선을 어떻게 치르려는 거냐”며 이 대표를 두둔했다.
이 대표가 윤 후보 측 인사들과는 갈등을 빚어왔지만 윤 후보와는 관계가 틀어질 정도는 아니라는 점도 사태가 수습될 것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다. 이 대표는 23일 SNS에 “우리 당원들은 모두 윤 후보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원해야 한다”며 윤 후보에게 힘을 싣기도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후보가 직접 나서거나 최측근인 권 사무총장을 통해 수습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권 사무총장은 이날 이 대표를 만나기 위해 서울 상계동에 있는 지역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이 대표를 만나지는 못했다.
국민의힘 중진, 내부 갈등에 “정신차려야”
당내 갈등이 표면화한 것에 대해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을 위주로 “정신차려야 한다”는 메시지가 터져나왔다. 김태흠 의원은 SNS에 “대선 후보, 당 대표, 선대위 핵심 인사들 왜 이러냐”며 “여러분들의 지금 언행은 사욕만 가득하고 전략과 시대정신 부재인 무능의 극치”라고 지적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윤 후보가 측근 파리떼에 포위돼 있다”며 “이 대표가 상임선대위원장을 사퇴하고 당 대표로서 당만 지키는 것도 방법”이라고 진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 당내 갈등과 관련, 윤 후보 때리기에 나섰다. 강훈식 민주당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은 라디오 방송에서 “이 대표 패싱은 윤 후보가 대선 후보로서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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