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중압감에 3개월 고심 끝에 연출 맡아"
애니메이션 ‘태일이’(1일 개봉)에는 1960년대 후반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청계고가도로가 종종 등장한다. 영화 중반부 기둥만 세워졌던 고가도로는 후반부에는 완성돼 있다. 전태일(1948~1970) 열사는 고가도로가 만들어질 때부터 완공된 이후까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다 세상을 떠난다. 급격한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은 제자리걸음이었음을 고가도로는 말없이 웅변한다.
청계고가도로가 설치됐다 철거되고, 청계천이 복원되는 동안 한국사회는 급변했다. 전태일의 삶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흐릿해졌다. 1985년생인 ‘태일이’의 홍준표 감독에게도 전태일은 그저 “역사교과서로 알던 사람”이었다. 홍 감독은 중학교 시절 시청각교육으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을 봤을 때도 “지루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전태일의 삶이 멀게만 느껴지던 그에게 ‘태일이’ 연출 제의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최근 서울 청계천로 전태일기념관에서 만난 홍 감독은 “3개월을 고심한 끝에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는 “과거 있었던 열사의 이야기를 제가 잘못 표현해 누가 되지 않을까 부담이 컸다”며 “제가 잘 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고도 말했다. 홍 감독은 2004년 고향 대구를 떠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해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청계고가도로가 한창 철거 중이던 때다.
‘태일이’는 우리가 잘 아는 전태일의 삶을 그려내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의 면모와 시대상을 부각한다. 대구에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던 전태일의 청소년기, 평화시장에서 미싱사와 재단사로 일하던 청년기, 누구나 알고 있는 비극적 결말이 스크린에 이어진다. 전태일이 상경해 어머니와 우연히 재회한 후 남의 집 마루밑에서 잠을 자는 장면은 당시 이촌향도와 도시빈민의 삶을 전한다. 전태일이 일했던 평화시장은 산업화 시대 소모품 취급을 받았던 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태일이’는 전태일의 남다른 삶을 딱딱한 구호로 전하려 하지 않는다. 평범하면서도 특별했던 전태일의 청춘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홍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을 때 열사라는 단어를 지우고 그의 삶을 바라보니 좀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래서 “열사라는 영웅적인 측면이 아닌 좀 평범한 20대 초반 청년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주길 원했다”고 말했다. “그의 삶을 돌아보며 위인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했지 이런 느낌보다는 그도 정말 힘겹게, 어렵게, 안쓰럽게 겨우겨우 그런 선택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홍 감독은 “전태일이 남긴 일기와 낙서 등이 많은 영감을 줬다”고 했다. “근로기준법을 알게 된 후 한 메모지에 ‘왜’라는 단어가 빼곡히 쓰여 있던 게 특히 눈길을 끌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 대한) 궁금증이 많기도 하고, 자신의 활동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던 당시 전태일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동윤이 전태일을, 염혜란이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1929~2011) 여사를, 진선규가 전태일의 부친을 목소리로 각각 연기했다.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게 목소리 연기 녹음을 먼저 한 후 그림을 그렸다. 애니메이션 속 등장인물의 입 모양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할리우드에서는 보편화된 작업 형태지만 국내에선 비용과 배우들의 작업시간 문제로 꺼려 왔던 방식이다. 홍 감독은 “높은 완성도를 위해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제작사 명필름에 제안을 해서 이뤄진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만들었던 제작사라 가능했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홍 감독은 전태일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며 “의아했던 점”이 있다. “당시 평화시장 재단사는 남자만 될 수 있는, 권력을 나름 행사하는 자리였는데, 왜 그는 소녀 미싱 보조사들을 적극 도와주려 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그들을 외면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사회였고,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하게 볼 수 있었는데 전태일은 그들을 도와줬어요.”
‘태일이’는 2만 명가량의 제작비 후원으로 만들어졌다. 후원자들 이름이 다 들어가 엔딩 크레디트만 9분가량이다. 홍 감독은 “후원이 굉장히 큰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힘든 적은 없었다”고 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니고, 도와주신 분들이 상당히 많았거든요. 같이 작업한 분들, 전태일재단 관계자 분들 등도 많은 도움을 주고 응원해주셨거든요. 제가 힘들다고 느낄 새가 없었던 것 같아요.”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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