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 view]'인플레이션 조세'라는 먹구름

송길호 2021. 11. 3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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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고도 성장기에는 나라경제 규모가 확대되면서 국가부채 비중이 슬그머니 낮아지므로 어느 정도 부채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장 침체기에 접어들면 부채상환 능력이 점점 약해지는 반면에 국가부채 증가 속도는 오히려 커지기 쉽다. 일시적 경기부양은 몰라도 (잠재)성장률은 높이기가 어렵기 때문에 재정적자 확대를 경계하지 않다가는 국민경제는 부지불식간에 위험과 불확실성에 휩싸인다. 국가부채가 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값보다 더 높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정상적 방법으로 부채를 갚을 도리가 없어진다. 화폐가치를 타락시켜 부채의 짐을 덜어내야 하는 잠재 ‘인플레이션 조세(inflation tax)’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고개를 쳐들기 마련이다.

19대 대선후보가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인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선이 2017년이면 무너진다.”고 엄중경고한 일이 바로 엊저녁 같다. 연간 국가예산은 2017년 404조원에서 2022년에는 604조원으로 무려 50% 가량 늘어난다. 초대형 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비교하면 2022년 GDP대비 국가채무비율 또한 50%를 넘어서고 2025년에는 58.8%로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으레 있기 마련인 추경예산을 감안하면 나랏빚은 더욱 늘어난다. 아직 다른 나라에 비하여 괜찮은 수준이라고 희석시키려 들지만, 최근 IMF의 경고처럼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급가속되는 국면이어서 어떠한 상황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다.

부채를 해결하려면 쓰임새를 효율적으로 줄여야 하지만 애나 어른이나 빚을 내서 쓰는 타성에 젖어들면 벗어나기가 어렵다. 특히 나랏빚은 일단 늘어나기 시작하면 증가속도가 불가역적으로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다. 잠재성장률이 추락하는 국면에서 땜질 경기부양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부채만 늘어나는 참사가 기다린다. 국가부채는 세금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경제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합한 값을 초과하는 조세부담은 ‘소득 없는 세금’ 즉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야하는 지경으로 치닫는다.

부채가 계속 늘어나다보면 결국에는 통화증발을 통해 화폐가치를 타락시키는 방법 즉 ‘인플레이션 조세’로 국가채무를 줄이는 방법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쉬운 예로, 왕권을 강화하겠다며 시작한 경복궁 중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자, 대원군은 당오전,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하여 화폐가치를 떨어트리는 변칙을 썼다. 1전과 같은 크기에 엽전에다 100배로 늘어난 금액을 새겨 유통시키니 갑작스런 돈 홍수로 경제 질서가 순식간에 마비되었다. 인플레이션 조세는 백성들의 재산을 강탈하는 꼴이어서 민생은 순식간에 도탄에 빠지고 무정부 상태가 되어 근세조선은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무너지게 되었다. 국모를 이웃나라 무뢰배들이 시해해도 그냥 참아야 하는 치욕을 겪은 나라가 지구상에 또 어디 있었던가? 예나 지금이나 경제에 묘수는 없다는 교훈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은 한 번도 안 가본 길을 가고 있다. 섣부른 진단에 따른 엉뚱한 처방에 더하여 확대되는 재정적자로 말미암은 잠재 자산인플레이션(asset inflation)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각건대, 정부 씀씀이가 커가며 재정적자 확대가 계속되는 한 가격을 억눌러 부동산문제를 진정시키기란 불가능하다. 포퓰리즘 국가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인플레이션 조세’는 마른 자는 더 마르게, 살찐 자는 더 살찌게 하다가 극한 상황에 다다르면 다 같이 죽게 만든다. 절망으로 이끄는 빚을 두려워해야 개인이나 사회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가계부채 증가도 염려되지만 2021년 6월 현재 가계대출 연체율은 0.17%,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11%로 사상 최저수준이다. 개인은 돈을 빌려 쓰고 갚지 못하면 패가망신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제 살길을 찾으려는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고위 공직자들이 국가부채를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은 정부는 빚을 내어 쓰면서 생색을 내고, 납세자들이 그 빚을 갚아야하기 때문일까? 과다한 국가부채는 미래세대가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도록 만든다. 저성장시대에 나라 빚을 늘려가는 행위는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 머리에 쇳덩이를 얹어 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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