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플랫폼 규제법 강행처리는 '교각살우'..심사숙고 필요"
플랫폼 규제법안의 입법을 앞두고 학계가 입법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대통령선거라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명확하게 논의하지 않는 채 국가적인 중요한 의사결정을 처리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30일 지능정보기술과사회문제 연구센터·스마트미디어서비스 연구센터가 주최한 이슈토론회에 참석한 학계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플랫폼 규제와 관련해 정책 입안자의 추가적인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이 시점의 디지털 플랫폼 규제는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김 교수는 짧은 주제 발표를 통해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디지털 경제의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EU는 자체 플랫폼이 없어 규제를 통해 방어하고 있는 상황인 가운데 우리나라는 글로벌 플랫폼들과 맞설 수 있는 토종 디지털 플랫폼을 보유한 거의 유일한 나라”라며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은 바로 잡아야 하지만 성급한 입법을 통해 불완전하게 규제하는 것은 국익이나 사회적 후생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론회에서는 현재 국회에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공정위 소관)과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보호법(방통위 소관) 추진이 동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 '규제 중복'이라고 비판했다. 류민호 동아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는 “공정위와 방통위에 이어 과기정통부까지 플랫폼 규제 권한에 뛰어들었는데, 이건 마치 영화 '파인드 어 웨이'처럼 서로 빨리 규제 깃발을 꽂아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상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다른 나라와 같이 디지털 플랫폼 관련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 보고서도 없는 상황”이라고 질타했다.
또 기존 유통 등 전통적인 산업에 적용하던 기준을 플랫폼의 산업에 똑같이 적용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플랫폼 이용자의 멀티호밍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로지 점유율로만 독과점 규제를 적용하기에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규제의 근거 없이 소수의 문제를 기업, 업계 전체가 마치 잘못하는 것처럼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기 쉬운 방식”이라며 “소비자와 소상공인을 위해서라는 명분 뒤에는 사실상 소비자 후생이나 신진 사업자, 혁신스타트업의 꿈을 포기하게 하는 더 큰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혁신을 위한 사회적 편익을 우리가 규제를 통해 희생시킬 것이냐에 대한 중대한 상황판단을 해야 한다”며 “사회적 논의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부득이하게 규제를 해야 한다면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규제권한을 공유하는 형태의 공동규제로 가야된다”고 말했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는 플랫폼 기업에게 데이터 관리를 잘 하라고 하면서 동시에 데이터를 다 공개하라고 하는 등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과연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범위에서 플랫폼에게 의무를 부과할 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먼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과연 국가적인 규제가 필요한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민호 교수는 “아직 규모나 업력이 짧은 국내 플랫폼 업체들에게 정부는 최소한으로 지켜야 하는 선만 가이드해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며 “시장 자체에서 자율 규제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성철 교수는 “최소한 차기 정부에서 차분하게 추진하는 것에 맞다고 본다”며 “지금의 규제법안들이 이용자, 소상공인을 내세우고 있지만 규제를 받을 자와 규제 영향권에 있는 자에 대한 고려는 부족한 실정인 만큼, 이러한 부분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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