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츠 고 브랜든" 올해 美 최고 유행어 등극 조짐[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정미경 2021. 11. 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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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지면에 영어 배우기 칼럼을 연재하는 관계로 “한국인들이 자주 쓰는 콩글리시가 뭐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힘내라”는 의미의 “파이팅”이 대표적입니다. 우리끼리 쓸 때는 괜찮지만 미국인을 만나거나 미국에 갈 때를 대비해 정확한 영어 단어를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에 가서“파이팅!” “화이팅! 이라고 외치면 현지인들이 대충 의미는 파악하지만 약간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봅니다. 그럴 때 영어로는 ”Go(고우)!“ 또는 ”Let‘s go(렛츠 고)!“라고 하면 됩니다. 특히 ”렛츠 고“는 단순히 ”갑시다“가 아니라 ”전진하자“ ”적을 눌러버리자“는 의미의 응원 구호로 많이 쓰입니다.

최근 미국 미시건 주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행사에서 “렛츠 고 브랜든”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시위자. “렛츠 고 브랜든”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다. 미시건라이브닷컴
”렛츠 고“가 요즘 미국에서 화제입니다. 뒤에 사람 이름 ’브랜든(Brandon)‘을 붙여 ”렛츠 고 브랜든“이라는 제목의 노래도 있고, 인터넷 밈(짤막 동영상)도 많습니다. 얼마나 화제가 됐는지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서도 다뤄졌을 정도입니다.

최근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로 가는 사우스웨스트 항공기 승객들은 웃지 못할 경험을 했습니다. 기장이 이륙 직후 기내 안내방송을 하면서 ”렛츠 고 브랜든“이라는 말로 마무리했기 때문입니다. 승객들은 시간과 장소에 적절치 않은 기장의 ’갑툭튀‘ 발언에 웅성거렸습니다. 마침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AP통신 기자가 이 사실을 기사화했습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측은 ”기장이 이 발언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내부조사에 들어갔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회사는 업무 중 직원이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렛츠 고 브랜든“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단어입니다. 보수 성향의 미국인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즐겨 씁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조롱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이든 O먹어라(F*** Biden)“의 뜻입니다. 아무리 예의범절을 따지지 않는 미국인들도 현재 집권 중인 대통령에 대해 직접적인 욕설을 하는 것은 삼갑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를 욕하고 싶을 때마다 ”렛츠 고 브랜든“을 은어처럼 씁니다.

10월 초 앨라배마 주 탤러데가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나스카 엑스피니티 시리즈 대회에서 우승한 자동차 경주 선수 브랜든 브라운. 그가 우승 인터뷰를 하는 동안 뒤쪽에서 관중들은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한 욕설을 외쳤고, 그를 인터뷰한 기자는 이 욕설을 브랜든 선수에 대한 응원 구호라고 하면서 “렛츠 고 브랜든”이라는 유행어가 탄생했다. NBC뉴스
바이든 대통령을 가리키는 비속어에 ”바이든“이 아닌 ”브랜든“이라는 이름이 들어가게 된 이유는 뭘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최근 유명 자동차 경주대회인 나스카(NASCAR) 엑스피니티 시리즈에서 브랜든 브라운 선수가 우승했습니다. NBC방송의 켈리 스타베스트라는 여기자가 현장에서 우승 인터뷰를 했습니다.

기자는 브라운 선수에게 ”지금 ’렛츠 고 브랜든‘이라는 응원의 함성 소리가 들리느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장면에서 관중들은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한 욕설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강한 보수적 정치 성향의 팬들이 흥분 상태에서 군중심리에 휩쌓인 것이죠. 당시 TV 인터뷰를 보면 뒤편 관중석에서 들리는 욕설 소리를 배경으로 기자가 ”렛츠 고 브랜든“을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타베스트 기자가 왜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렛츠 고 브랜든“으로 ’둔갑‘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전파를 타는 인터뷰 상황에서 ’방송사고‘를 막기 위해 순간의 기지를 발휘했을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상식선에서 이해가 가능한 일입니다.

최근 열린 대학 미식축구 경기 관중석에 걸린 “렛츠 고 브랜든” 현수막. 스포츠 경기장, 대형 행사장, 고속도로 주변 전광판 등에는 바이든 대통령을 조롱하는 “렛츠 고 브랜든” 구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AP뉴스닷컴
물론 이번 인터뷰 사건 이전에도 스포츠 이벤트나 대형 행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비판과 욕설은 심심찮게 들려왔습니다. 폭등하는 물가, 코로나19 대응력 부족, 사회안전망 예산 통과를 둘러싼 정치권의 대치 등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유발하는 요인들이 생길 때마다 불만의 목소리는 커져 갔습니다. 그런 불만의 목소리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렛츠 고 브랜든“입니다.

”렛츠 고 브랜든“은 직접적인 욕설은 아니면서 적당한 유머감이 섞여있어 미국인들이 딱 좋아할만한 단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보수 성향의 매체 워싱턴타임스는 ”기술적 검열에 걸리지 않고 짐짓 무해하게 들리는 ’렛츠 고 브랜든‘은 보수 쪽에서 터져 나오는 마음의 외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진보 성향의 CNN은 ”’렛츠 고 브랜든‘이 얼마나 오랫동안 인기를 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전성기를 맞은 것만은 분명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보수파 정치인들은 신이 났습니다.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의사 발언을 끝낼 때마다 구호처럼 ”렛츠 고 브랜든“이라고 외치는 것이 유행이 됐습니다. 이 문구가 인쇄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정치인들도 있습니다. 최근 공화당 소속의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주 내에서 영업하는 기업과 상점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을 거부해도 된다는 내용의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서명 장소는 다름 아닌 플로리다 서쪽의 작은 도시 브랜든이었습니다. 도시 이름의 상징성 때문입니다.

최근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운데)는 브랜든이라는 소도시를 방문해 바이든 행정부의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에 반대하는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그가 일부러 이곳을 찾은 것은 지명 브랜든이 바이든 대통령을 조롱하는 유행어 “렛츠 고 브랜든”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더컨버세이션닷컴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대통령을 향한 비판과 조롱 수위가 높습니다. 1890년대 말 사생아를 가진 채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로버 클리브랜드 전 대통령(22대·24대)은 가는 곳마다 ”엄마, 나의 아버지는 어디 있어?“라는 군중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중혼 제도를 지지하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던 토머스 제퍼슨(3대), 앤드류 잭슨(7대)) 전 대통령 등도 비슷한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현대로 와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그를 원숭이에 비유하는 모독적인 발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에 비해 ”렛츠 고 브랜든“은 훨씬 광범위하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틱톡,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렛츠 고 브랜든“이 유행어가 된 것을 알고 있을까요. 최근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이 그 문제에 집중하거나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방문하는 곳에서 ”Let’s go Brandon“이라는 구호가 들리고 현수막과 전광판이 내걸린다면 모를 리가 없겠죠. 날이 갈수록 많아지는 그 문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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