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의 아시아 기업 전성시대 <13>] 탄소배출 감축에 기회 잡은 아시아 기업들.."태양광·풍력이 뜬다"
최근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렸다. 각국 수반 및 주요 인사들이 탄소배출 감축이야말로 인류가 시급히 해결할 문제라는 데에 동의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 간에 합의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총회 합의문 사상 처음으로 석탄발전 감축을 명시하는 등의 진전이 있었다. 이번 호에는 전력 부문에서 탄소배출 감축 노력과 관련한 비즈니스 모델과 아시아 기업들을 소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시아는 탄소배출 감축 발전 사업과 관련해 주목할 기업들이 유달리 많은 곳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탄소배출의 주범이 석탄발전인데 전 세계 석탄발전의 70% 이상이 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류가 탄소배출을 제로(0)로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아시아의 화력발전소 전부를 퇴장시킨다는 것을 가정해야만 한다. 아시아의 거대한 석탄발전 산업이 클린에너지 발전 사업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많은 아시아 기업들이 기여를 함과 동시에 기회를 누리게 될 것이다.
필자가 볼 때 탄소배출 감축과 관련한 비즈니스 모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탄소배출 산업을 대체하는 기술 및 제품을 만드는 영역이다. 태양광 모듈, 풍력터빈 제조 등이 그 사례다. 어쩌다 보니 이 부문을 이끄는 기업 대부분은 아시아에 있다. 둘째, 한편 화력발전소를 대체하는 클린에너지 발전 사업과 이와 관련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역시 매우 큰 사업 기회가 될 것이다.
태양광발전 중심국 된 중국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은 태양광 발전 모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태양광은 일조량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는 클린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난 십수년간 진행된 모듈 제조 원가 하락 덕분에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태양광발전은 저렴한 에너지원이 됐다.
그런데 어떤 배경들로 해서 태양광 산업 대부분은 중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폴리실리콘, 태양광 웨이퍼, 태양광 셀, 태양광 유리, 에틸렌초산비닐(EVA) 필름, 태양광 패널의 주요 부품에서 중국 기업들의 전 세계 점유율은 80%를 넘나들고 있다.
중국이 태양광 산업을 주도하게 된 데에는 크게 세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태양광 산업이 형성되는 초기에 정부 보조금이 막대했다. 둘째, 태양광 모듈 생산 과정에서 전력이 상당히 많이 쓰이는데 산업용 전기요금이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지역 중 하나가 중국 서부 지역이었다. 한때 태양광 산업을 주도했던 독일, 일본, 미국 기업들이 중국과 생산비 경쟁에 밀리면서 시장에서도 점차 밀려났다. 셋째, 제조부터 연구개발까지 태양광 제조 생태계가 중국 내에 완성되면서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2015년쯤부터는 태양광 기술 및 양산 혁신 대부분은 중국에서 나왔다. 외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금도 중국 태양광 산업 내에서는 차세대 기술 표준을 둘러싸고 온갖 논쟁이 치열하다. 예를 들면, 차세대 웨이퍼 사이즈를 M10 (182㎜)으로 할지 M12(210㎜)로 할지, 차세대 태양광 셀을 Topcon 방식으로 할지 HJT 방식으로 할지 등이다. 이러한 논쟁에서 비중국 기업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현재의 실리콘 소재를 넘어서서 완전히 새로운 소재가 발명되지 않는 한, 중국 기업들이 앞으로도 태양광 모듈 산업을 주도할 것 같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태양광 산업의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통웨이(Tongwei⋅폴리실리콘), 롱이(Longi⋅웨이퍼 및 모듈), 중환(Zhonghuan⋅웨이퍼), 신이솔라(Xinyi Solar⋅태양광유리), 징성기전(晶盛机电)등을 들 수 있다. 이들 기업은 각 영역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이 30%를 넘는 글로벌 기업들이다.
탄소배출 감축으로 주목받는 풍력발전
클린에너지의 또 다른 대명사인 풍력터빈 산업 역시 유망하다. 풍력발전 역시 풍력터빈 제조 원가 절감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태양광만큼은 아니지만, 저렴한 발전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풍력터빈 산업은 아직은 유럽이나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베스타스(VESTAS), 지멘스가메사(Siemens Gamesa), 그리고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이 있다. 그 배경은 지리적 특수성과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서유럽은 강력한 편서풍 때문에 풍력 자원이 풍부하며 근해에 대륙붕이 넓어서 바다에 풍력터빈을 설치하는 비용이 비교적 적다. 한편 풍력터빈은 거대한 건조물로 15년 이상 내구성이 검증돼야 한다. 유럽계 풍력터빈 기업들은 이 시장에 오래전 진출해서 20년 이상의 트랙 레코드(track record)를 쌓아왔다. 반면 아시아를 포함해 다른 지역의 기업들은 풍력터빈을 운행한 역사가 짧고, 경험치가 부족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시아의 풍력 공급망이 서서히 성장하고 있다. 완성품 터빈에서는 아직 밀리고 있으나, 부품 영역에서는 중국 및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풍력터빈 부품에서의 경쟁력은 비용과 내구성인데 아시아 기업들은 비용 측면에서는 원래부터 우수했고, 최근 들어 내구성에서도 인정받으면서 유럽계 터빈 기업들이 공급망에 아시아 기업들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중국의 풍력 관련 기업으로는 골드윈드(Goldwind⋅풍력터빈), 밍양(Mingyang⋅터빈발전기), 웨이하이 광웨이(Weihai Guang-wei⋅터빈 날개 소재), 루위에(Ruyue⋅터빈 단조 제품들), 시노마(Sinoma⋅날개), 타이탄윈드(Titan Wind⋅날개 및 타워) 등이 언급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풍력터빈 타워를 제작하는 CS윈드가 유명하다.
“클린에너지 발전 및 전력망 산업 비중 커질 것”
특히 탄소배출 감축과 관련한 비즈니스 모델로 클린에너지 발전과 전력망 산업이 꼽힌다. 우선 태양광, 풍력발전 사업 부문이 높은 성장을 기록할 것이 분명하다. 언젠가는 전 세계의 석탄발전소를 전부 퇴출하고 이를 대체해서 전력을 공급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클린에너지원 발전 사업이 수익성 측면에서 매력적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클린에너지원은 발전량을 조절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 사업 모델의 핵심은 전력 수요가 몰리는 피크(peak) 타임에 전력 공급을 늘려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전력 수요가 많은 여름철 한낮이 전력 기업이 수익을 가장 많이 올리는 기간이다. 그런데 만약 여름철 한낮에 태양광발전이 과잉 공급될 경우에 이때가 오히려 수익성이 가장 낮은 기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업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이유가 있다. 이 산업이 아직 초기 성장 국면에 있으며 기존의 발전 산업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성장의 여지가 너무 커 보이기 때문이다.
클린에너지 발전 부문에서는 어떤 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발전 사업의 주요 특징은 자산 회전율(매출액을 자산으로 나눈 값)이 낮고 대규모 자본금이 장기간에 걸쳐 묶일 수밖에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업의 경쟁력은 누가 대규모의 자본을 시장에서 저렴하게 조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래도 이 사업 영역은 국유 기업이거나 모기업의 규모가 큰 경우가 유리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관련 기업으로 롱위안(龍源)전력, 삼협신능원 (三峡新能源), 다탕신능원(大唐新能源) 등의 기업들이 있다. 이들의 특징은 모기업이 국유 기업이어서 자본 조달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한편 인도에서는 타타파워(Tata Power), 아다니 그린 에너지(Adani Green Energy) 등이 클린에너지 발전 사업을 적극 펼치고 있다. 이들은 인도 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클린에너지원 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여기에 맞춘 전력망과 스마트그리드 구축 사업도 큰 기회가 될 것이다. 클린에너지원은 발전 공급량을 임의로 결정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 해결 방안은 전력을 저장(배터리나 양수 발전)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전력을 보내는 전력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 전력 수급의 지역별 불균형이 심각하다. 건조기후의 서북부나 내몽고 지역은 태양광, 풍력 등 클린에너지원이 풍부하지만 전기 수요는 별로 없다. 반면 인구가 많고 산업이 발달해서 전력 수요가 많은 동부나 남부 지역은 클린에너지 자원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고압 전력망을 대거 건설해서 전력의 장거리 이송을 쉽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관련 기업으로 국전남단(国電南瑞)을 꼽을 수 있다. 중국 난징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전력기기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업체다. 국전남단은 클린에너지원의 비중이 커지면서 발생하는 시차, 지역 차 문제를 실시간으로 해결하는 스마트그리드 부문에서 중국 내 점유율 1위 기업이기도 하다.
인도 최대 전력 회사인 파워그리드(Power grid)도 전력망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업무에 특화돼 있다. 인도는 전력 산업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국가다. 전력 수요 잠재력이 높은 인구 대국 중에서 인도만큼 태양광발전 경쟁력을 확보한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태양광발전 원가는 이미 석탄 화력발전 원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도는 전력 발전의 석탄 의존도(70% 이상)가 심각할 정도로 높은 나라다. 역시 석탄발전 비중이 높은 중국이 이제야 석탄 원가와 태양광 원가가 비슷해진 수준에 도달한 것에 비하면 인도는 태양광발전 사업을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가졌다 하겠다.
인도 경제는 명목기준으로 연간 10%씩 성장하는 나라다. 앞으로 태양광 발전 원가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수적인 가정을 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전력가격이 저렴하게 느껴질 것이며, 이는 인도 전력 산업 장기 성장의 기반이 될 것이다. 또 인도는 거대한 대륙으로 전력을 지역별로 운송하는 전력망 인프라 건설이 더욱 필요해질 것이다. 그래서 파워그리드와 같은 기업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수력은 태양광⋅풍력발전 보완 역할
수력발전의 가치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대형 댐을 더 많이 지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태양광, 풍력발전을 보완하는 역할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는 말이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전력 수요의 변화는 석탄이나 가스발전소에서의 전력 생산량의 변화를 통해서 해결해왔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화력발전소가 퇴출당할 수밖에 없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양수발전(揚水發電)이 유력한 대안이 될 것이다.
물론 잉여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하거나 전기분해를 통해 수소를 생산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지만, 이들 기술의 원가가 여전히 비싸서 안정적이고 광범위한 에너지 저장 방식으로 활용되기 어렵다. 반면 기존의 댐 설비를 활용해 양수발전 설비 투자를 할 경우에는 저렴한 가격에 대량의 에너지 저장이 가능하다.
중국의 대표적인 수력발전 업체로는 양쯔파워(Yangtze Power)를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양쯔강 유역의 수력발전 설비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양쯔강의 풍부한 수량 덕분에 동사의 발전 원가는 항상 중국 내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만약 양수발전을 통한 에너지 저장 기능까지 더한다면 향후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큰 맥락에서 보면 클린에너지 발전원과 전력망, 스마트그리드 간에는 중요한 시너지 관계가 있다. 즉 초고압 전력망, 스마트그리드, 에너지 저장 기술이 발달할수록 클린에너지원의 아킬레스건인 전력 공급량 통제 불능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클린에너지원의 활용 가치가 더 높아지고 따라서 더 많은 클린에너지 투자가 이뤄질 것이다.
지금은 탄소배출 감축이 충분히 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많다. 하지만 클린에너지원과 부대 산업 간의 시너지가 활발하게 작용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른 속도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많은 아시아 기업이 여기서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