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 | 날씨양조장 한종진 대표 인터뷰] "제철 과일로 만든 막걸리 즐기세요"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2021. 11. 30.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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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양조장의 다양한 막걸리 제품들. 제철 과일로 만든 계절 막걸리다. 최고급 와인의 대명사인 부르고뉴 와인병을 사용했다. 사진 날씨양조장

서울 문래동에 있는 작은 양조장 ‘날씨양조장’이 만드는 막걸리는 색다르다. 첫째, 단맛을 철저히 뺐다. 거의 단맛이 나지 않는다. 세 번 담금 하는 삼양주 스타일이면서, 단맛이 가장 덜 나는 고두밥으로 밑술과 덧술을 만든다. 감칠맛을 내려고 사용하는 찹쌀도 단맛을 줄이려고 소량만 쓴다. 대신 신맛이 강하다. 일반적인 프리미엄 막걸리들이 ‘단맛과 신맛의 조화’를 추구하는 데 반해, 날씨양조장 제품들은 ‘신맛과 드라이(달지 않은)한 맛’ 일색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게 무슨 막걸리야?”라며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워낙 소량 생산이라 만드는 즉시 품절이다.

둘째, 샴페인 유리병을 사용한다. 지금은 한두 군데 비슷한 술병을 사용하는 막걸리들이 있지만 샴페인 유리병을 막걸리에 처음 사용한 곳이 날씨양조장이다. 게다가 샴페인 뚜껑처럼 철 와이어를 사용해 얼핏 보면 고급 스파클링 와인 같다. 750mL 한 병 가격이 2만원대로 꽤 비싸다.

셋째, 쌀을 기본으로 하고 다른 재료에 비해 가장 많은 양을 사용하면서도 부재료인 제철 과일 맛과 향이 돋보이는 계절 막걸리다. 봄에는 한라봉과 귤껍질을 넣은 ‘봄비’ 막걸리, 여름에는 수박이 들어간 ‘여름바다’ 막걸리, 가을엔 캠벨 포도가 들어간 ‘해질녘’ 막걸리를 내놓는다. 대부분 300병 내외의 한정 수량만 만든다.

한마디로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막걸리는 아예 만들지 않는다. 철공소 골목으로 유명한 서울 문래동에 자리한 날씨양조장을 찾았다. 근처에 흔한 안내 이정표 하나 없는 작은 양조장이다. 작은 마당이 있는, 오래된 한옥 주택을 양조장으로 개조했다. 한종진 대표, 그리고 3년 전 결혼한 아내 김현지씨가 수줍은 웃음 띠며 기자를 맞이했다.

먼저 양조장 시설을 둘러봤다. 숙성 탱크에는 보라색 막걸리가 가득하다. 영동 캠벨포도를 부재료로 한 해질녘 막걸리다. 쌀은 강화 섬 쌀을 사용했고, 전통 누룩을 넣었다. 포도 외에 다크 체리도 넣었다. 37일간의 발효가 막 끝나 다시 일주일간 숙성을 거치고 있는 단계다. 자동교반 장치를 해서 하루에 10분간 술을 섞어준다.

“지금 있는 술은 영동 캠벨 포도를 넣은 거다. 영동 캠벨 말고, 상주 캠벨, 대부도 캠벨 포도로도 같은 이름의 막걸리 ‘해질녘’을 내놓을 예정이다. 같은 포도 품종이지만, 지역이 다른 만큼 미세하게나마 맛과 향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거다.”(한종진 대표)

멥쌀은 강화 섬 쌀을 쓰지만 찹쌀은 남원 쌀을 쓴다. 그러나 찹쌀 함유량은 많지 않다. 단맛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서다. 찹쌀은 멥쌀보다 단맛이 더 난다. 한 대표는 “막걸리도 화이트와인처럼 단맛 없이도 충분히 입안에서 적당한 산미를 느끼면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 동의할 사람은 아직 많지 않을 것이다. ‘달짝지근한 막걸리’에 길든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한종진·김현지 부부는 국내 대표적 양조 교육기관인 막걸리학교에서 만나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2020년 1월 서울 문래동에 ‘현지날씨’라는 이름의 전통주 보틀숍을 냈다. 지금은 서울과 수도권에 전통주 보틀숍이 20여 개나 되지만 현지날씨가 들어설 때만 해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일 년 만인 2021년 1월에는 보틀숍 인근에 ‘날씨양조장’을 차렸다. 보틀숍은 올 9월에 전통주를 가벼운 안주와 함께 마시는 ‘바’로 바꾸었다.

한종진 날씨양조장 대표 2020년 1월 현지날씨(전통주 보틀숍) 오픈, 2021년 1월 날씨양조장 설립 / 사진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양조장 이름을 날씨양조장이라 지은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들이 늘 같은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또 사람마다 마시는 술도 천양지차다. 비 오는 날은 막걸리가 당기는 사람도 있고 소주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우울한 날은 소주를 마시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분위기 잡고 싶을 때 와인을 찾는 사람도 있고. 기분에 따라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느낌이 달라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분, 테루아(지역성), 날씨, 계절, 감정의 폭에 따라 다양한 맛의 술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시기도 달라질 것이다. 날씨, 계절에 따라 달리 마시고 싶은 술들을 계속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양조장 이름에 담았다.”

단맛이 거의 없다.
“당도를 높이고 효모 증식을 위해 프리미엄 막걸리 업체들은 떡 형태로 밑술을 빚으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구멍떡 혹은 백설기 등등. 혹은 밑술로 죽을 쑤기도 한다. 우리는 오로지 고두밥으로 밑술과 덧술을 만든다. 고두밥은 상대적으로 단맛이 가장 덜 나는 형태다. 찹쌀도 소량만 사용한다. 효모가 당분(고두밥)을 먹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발효 기간(37일)이 다른 술보다 매우 길다. 일반 막걸리들은 효모도 쓰기 때문에 7~10일이면 발효가 끝난다. 맥주도 대개 2주면 끝난다.”

숙성(7일)은 짧은 편 아닌가.
“부재료로 과육을 쓰기 때문에 숙성을 오래 하면 군내가 생긴다. 그래서 과실이 들어간 막걸리는 숙성을 오래 할 수 없다. 과육에는 어느 정도 당분이 있다 보니 숙성 기간이 길 경우 효모가 과육의 당분과 향들을 잡아먹어 버릴 가능성이 있다. 부재료인 과일의 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숙성은 짧게 하는 편이다.”

보틀숍 운영이 제품 개발에 어떻게 도움이 됐나.
“제품 디자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기존 막걸리와는 시각적으로, 디자인 측면에서 다른 술을 만들고 싶었다. 술에 관한 이미지를 확 바꿀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바 운영을 통해서 하게 됐다. 부르고뉴 스타일 유리병을 막걸리에 쓴 것이나 막걸리 병뚜껑에 샴페인처럼 와이어를 사용한 것도 우리가 처음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술을 잘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술 외관을 보고 술을 고르기 쉽다. 가격도 디자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술맛을 보지 않고 사는 상황에서는 디자인이 가격 결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 첫 구매에는 외관 디자인이 영향을 미치고 재구매율이 높아지려면 맛이 좋아야 한다.”

앞으로 만들 술은.
“딸기와 바나나가 들어간 겨울 술을 만들 예정이다. 또 낮은 도수의 순곡주 스타일 신상품도 준비하고 있다. 알코올 도수는 5도 이하로 생각하고 있다. 용량은 350mL. 맥주는 사람들이 밖에서도 즐겨 마시는데 막걸리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이 음료수 마시듯, 맥주 마시듯 즐길 수 있는 막걸리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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