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밀도 고층 개발은 기후위기 시대에도 유효할까
고밀도·고층이 고밀도·저층보다 140% 더 많아
20세기 후반 이후 세계 인구 구조의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흐름은 크게 세계화, 도시화, 노령화, 저출산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기후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인구 흐름이 도시화다. 도시는 면적으로는 지구 표면의 2%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의 78%를 소비하고, 온실가스의 60% 이상을 배출한다.
유엔의 세계 도시화 전망 보고서(2018)에 따르면 도시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55%에 이른다. 1950년의 30%에서 비중이 거의 두배로 높아졌다. 인구 수로 보면 1950년 7억5100만명에서 2018년 42억명으로 5.6배나 늘었다.
유엔은 2050년엔 도시 인구 비율이 68%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앞으로 30년 안에 도시 거주자가 25억명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커져만 가는 도시의 효율을 높이는 최적의 방안으로 꼽히는 게 고밀도 고층건물이다. 무엇보다 건물이 높을수록 바닥 면적당 수용 인원이 많아져 도시 경계가 무분별하게 확장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으면, 각종 시설과 에너지 관리 시스템의 효율화를 꾀하는 데도 유리하다. 도시에서 건물은 운송 부문에 이어 두번째로 큰 온실가스 배출원인 점을 고려하면 이는 무시못할 장점이다.
과연 고밀도 고층화는 인류 최대 현안이 된 기후 위기에 바람직한 대응 방법일까?
파리식 저층 개발이냐, 맨해튼식 고층 개발이냐
영국 에든버러네이피어대 연구진이 고밀도 고층 건물의 효율에 대한 통념을 깨는 연구 결과를 공개 과학학술지 ‘도시 지속가능성’(Urban Sustainability)에 발표했다.
연구진의 결론은 스카이라인 경쟁을 벌이는 뉴욕 맨해튼식의 고밀도 고층 개발보다 5~6층 건물이 주축을 이루는 파리 같은 고밀도 저층 개발이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기후친화적 방식이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분석을 위해 영국 7개 도시와 유럽 4개 도시의 건물 데이터를 토대로, 도시 건물의 전체 생애주기에 걸친 탄소배출량을 모의 계산했다.
건물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운영 탄소(Operational carbon)와 내재 탄소(Embodied carbon)로 나뉜다. 운영 탄소는 사용 중인 건물 관리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말한다. 내재 탄소는 건축 원자재 생산, 운송과 건물 신축, 보수, 철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가리킨다. 현재 전 세계 에너지 관련 탄소 배출량의 39%가 도시 건물에서 나오는데, 운영 탄소가 28%, 내재 탄소가 11%다.
두 부문의 탄소 배출량은 건물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기존 건축 설계는 주로 운영 효율에 초점을 맞춰 개선 작업을 벌여 왔다. 이에 따라 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재 탄소가 건물 온실가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내재 탄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광물이다. 45%에 이른다. 그 중에서도 콘크리트의 내재 탄소 기여도가 80%로 압도적이다.
연구진은 우선 고밀도-고층(HDHR), 저밀도-고층(LDHR), 고밀도-저층(HDLR), 저밀도-저층(LDLR) 네 가지 유형의 도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어 도시 내 건물 유형을 비주거-저층, 비주거-고층, 주거-저층, 주거-고층, 단독주택 5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그런 다음 조사 대상지의 건물 높이, 층수, 건물 바닥 면적, 외벽 재료, 도시내 블록 수와 크기, 녹색 공간, 평균 도로폭, 빌딩간 평균 거리 등의 데이터를 수집했다.
연구진은 이 데이터들을 컴퓨터 모델에 넣어 1km² 이내 지역에 있는 건물 수와 수용 인원에 따라 건물 생애주기의 탄소 배출량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도시 유형별로 인구 수(2만, 3만, 4만, 5만)가 달라질 때마다 탄소 배출량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동일한 인구를 기준으로 할 때 건물 전 생애주기의 탄소배출량은 고밀도 고층 도시가 고밀도 저층 도시보다 140%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개별 건물 관점에서 보면 고층일수록 더 효율적이지만, 지역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프란체스코 폼포니(Francesco Pomponi) 교수는 “고층 건물들은 사생활 보호, 조망권 등의 이유로 저층보다 건물 간격이 더 벌어져야 하며 더 육중한 구조와 더 두툼한 기초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알루미늄, 철강 등 탄소집약적인 건축 자재의 사용량을 늘린다.
최선의 선택은 10층 이하 고밀도 개발
연구진은 다양한 매개변수로 5천가지의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끝에, 건물 생애주기에 걸친 탄소배출량 저감을 위해서는 10층 이하 도시 개발이 최적의 선택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 방식으로 도시를 개발할 경우 건물 전체 수명주기 또는 60년 동안 고층 개발보다 1인당 365톤의 탄소를 덜 배출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이는 자동차 150만km를 운행할 때 나오는 탄소 배출량에 해당한다고 한다. 저층 도시가 고층 도시의 인구 수용 능력에 맞추려면 더 많은 건물과 땅이 필요하겠지만, 이를 고려해도 전체 탄소배출량은 고층 개발 때보다 적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탄소배출량만 놓고 보면 대도시 교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저밀도 저층 개발이 가장 적다. 그러나 인구까지 고려하면 고밀도 저층 개발이 저밀도 저층 개발에 비해 탄소배출량은 25% 많지만 인구는 2배를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폼포니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면서도 건물의 환경 영향을 줄이는 미래 도시 개발 전략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며 “이제는 ‘단일 건물’이 아닌 ‘도시 속의 건물’로 관점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고층 건물이 사회적 결속과 커뮤니티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 사례를 들어 “파리 방식의 개발 이점은 환경 차원의 지속가능성을 넘어선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다만 이번 연구에는 건물 이외에 운송을 비롯한 다른 요인들이 탄소 배출에 끼치는 영향은 포함되지 않았으며, 이는 향후 연구 과제라고 밝혔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패싱 논란’ 이준석 모든 일정 취소…‘중대결심’ 관측도
- 이재명 “국토보유세 국민 반대하면 안 한다”
- ‘황운하 논란’ 진화 나선 송영길 “윤 지지하는 국민 훈계, 매우 오만”
- 가야인의 반려견? 창녕 고분서 ‘순장견’ 3마리 유체 나왔다
- ‘오미크론’ 17개국 확산…스위스 겨울유니버시아드 대회 취소
- 54억 추경까지 하더니…오세훈은 왜 서울 도시재생을 흔들까
- 이쯤되면…CNN 앵커, 주지사 형 성폭력 논란 무마하려 적극 개입
- 이수정 “윤석열 페미니즘 이해 깊지 않고, 이준석 래디컬리즘과 구분 못 해”
- 여기, 노후에도 존엄하게 살 수 있는 마을이 있다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물’ 쿼카는 정말 웃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