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이사회 다양성'은 ESG투자의 성공조건

송길호 2021. 11. 30.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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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 위드 코로나 덕분에 ‘2021 여성 금융인 국제행사’를 오랜만에 치를 수 있게 됐다. 올해로 7회를 맞은 이번 행사의 주제는 ‘ESG 책임 투자와 이사회 다양성’ 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글로벌 책임투자 총괄인 산드라 보스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전문가들과 함께 국내 금융계의 ESG 전략을 논의했다. 환경(E)에 집중되어있는 ESG경영을 사회적 책임(S)과 지배구조(G)문제로 확대해 균형 있는 전략을 모색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산드라 보스의 강연이었다. 그는 세계 1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이사회의 다양성을 통해 전 세계 기업경영의 지도를 어떻게 바꿔나가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블랙록의 경우 이사회의 다양성을 구현하는 일을 우선순위로 둔다고 했다. 이사회의 다양성이 탁월한 리더십과 우수한 재무성과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를 바탕으로 블랙록은 투자한 기업이 자발적으로 다양성을 개선하지 않으면, 특정 이사에게 반대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성별 다양성을 유도했다고 한다. 이미 전 세계 975개 기업 이사회에서 1862명의 이사에게 반대표를 행사했다고 한다. 이 같은 의결권 행사를 통해 미주지역은 물론,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 각 지역의 투자대상 기업이 성별 다양성을 증진하도록 일조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사실 지금은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 제고를 위해 각국 정부는 물론 규제 당국, 상장 당국 그리고 민간기업들이 전방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아시아국가들의 예만 봐도 인도는 2015년 이사회에서 최소 1명의 여성이사를 두도록 의무화 했고, 홍콩 증권거래소는 2021년 기업지배구조법 및 상장규칙에서 모든 상장사에 대해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 달성을 위한 목표와 일정을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일본금융청은 2021년 고위직 다양성을 촉진하는 정책을 담은 기업지배구조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호주도 2020년부터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에 적용되는 기업지배구조법을 통해 이사회, 고위 임원 및 인력구성에서 성별 다양성을 달성하기 위한 목표설정을 권고했고, S&P/ASX300 기업의 여성 이사 비율을 30% 이상으로 의무화했다. 싱가포르는 사회가족개발부 산하 ‘이사회 다양성위원회’에서 여성이사를 2020년 20%에서 2030년까지 30%로 끌어올리도록 목표를 제시했다. 말레이시아, 태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들도 ‘준수 혹은 미준수 시 설명’ 접근법과 유사한 성별 다양성 관련 공시에 대한 기업 지배구조법을 제정했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미국의 모건스탠리가 발표하는 MSCI지수에 따르면 상장사 이사회 내 여성비율은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 현재 4.9%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중국, 일본이 각각 13.0%, 10.7%라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도 채 안되는 수준이다.

반면 내년 8월에 본격 시행되는 우리나라 개정 자본시장법은 성별 다양성 통계를 공개하는 기업 대상이 상장사 전체가 아닌 152개만 해당한다. 그마저 자율공시제라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이다. 준수의무가 없으므로 제재도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여성의 이사회 진출이 9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적으로 기업에 모든 것을 맡겨놓으면 자발적으로 성별 다양성을 준수하는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기계적으로 성별 다양성을 요구하는 개정 자본시장법에 대해 남성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그동안 기업 이사회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지적은 다소 무리가 있다. 기업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좀 더 합리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선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이 필요하다. 선진국 당국이 기업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 공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이유는 여성을 배려한다기 보다는 바로 기업과 나라경제를 위해 꼭 필요한 장치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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