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 천재화가의 마지막 걸작, 로비스트 거쳐 이건희 품으로
일제강점기 조선 화단을 풍미했던 천재 화가의 말로는 비참한 요절이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그림 또한 기구하기 짝이 없는 운명을 밟았다.
1929년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일제 조선미술전람회 입선과 특선을 휩쓸고 후원자 도움으로 일본 유학까지 다녀오며 조선 미술의 기린아로 떠올랐던 대구 출신 화가 이인성(1912~1950). 지금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선보이고 있는 작품 <다알리아>에 얽힌 이야기가 그의 삶과 더불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이인성은 해방 뒤 이화여중고 교사로 재직하면서 조선미술문화협회와 회화연구소를 꾸려 독립된 나라의 미술가로서 새 삶을 꿈꿨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국군에 의해 수복된 서울 북아현동 자택에서 취중 시비가 붙어 침입한 경찰의 총기 오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의 나이 38살이었다. 한해 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인성의 마지막 대작 <다알리아>는 비극적인 요절을 색감과 구도 그 자체로 예고하는 듯하다. 기와지붕이 너머로 보이는 담벼락 곁에서 푸르른 하늘을 향해 만발한 다알리아 꽃과 가지들의 무더기가 드러나 보인다.
얼핏 인상파적 화풍으로 화사한 꽃 정원의 자태를 표현하고 있는데, 보면 볼수록 꽃망울과 덩굴이 빚어내는 색감과 하늘거리는 느낌이 하늘빛과 어울려 어딘지 불안하고 창백한 기운이 넘실거린다. 이인성의 화풍은 일제강점기엔 생동감과 독창성이 넘쳤으나, 무슨 까닭인지 해방 이후 말년기에는 화풍이 맥을 잃고 색감도 예년의 활기를 잃어버리는 경향을 보인다. <다알리아>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이 된 장년 시절의 그림으로, 말년기 조락한 화풍을 나름 드러내면서도 특유의 선명한 색조의 어우러짐과 불사르는 듯한 역동적 구도를 보여준다. 불과 1년 뒤 닥칠 비극적 죽음을 암시하면서도 말이다.
현재까지 정확한 거래 경위가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작품은 1950년대 전후 여러 미술계 인사의 손을 거쳐 1970년대 ‘코리아게이트’로 유명한 재미동포 로비스트 박동선씨 수중에 들어가, 당대 한국 최고의 고위급 사교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그의 오류동 별장 안에 내걸리게 된다. 코리아게이트는 1970년대 초·중반 박정희 정권의 사주를 받은 박씨가 미국 정치권 인사들에게 뇌물을 뿌리며 곡물 수입과 미국의 국방 지원 등에서 이득을 취하고자 벌인 금전 매수 의혹 사건을 말한다. 지금도 세간에는 그가 외교 정치 브로커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 화랑시장 역사에서 그는 1세대 컬렉터의 시초가 됐던 인물로도 회자되고 있다. 그는 숱한 미국 하원의원과 국내 정계 유력자 등을 수시로 자신의 별장으로 불러 호화로운 파티를 벌이곤 했는데, 당시 거실에는 그가 1960년대부터 모은 청자 등 도자기와 박수근·천경자·이인성의 그림들이 분위기를 돋우는 소품 구실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을 다녀온 일부 인사들은 응접실이 미국 저택처럼 서화, 골동품, 현대의 비싼 그림과 음향기기로 꽉 차 있어서 미술관과 음악감상실을 합쳐놓은 것 같았다는 증언을 남기기도 했다.
외교 로비와 사교의 현장을 지켜보던 <다알리아>는 1980년대 초반 당대 화상들의 손을 거쳐 대구 출신 이인성 화가에게 관심이 유난히 컸던 이건희 삼성가 회장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회장이 <다알리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77년 금성출판사에서 처음 발간된 <한국 현대미술 대표작가 100인 선집―이인성>에 그의 꽃 그림 대표작인 <장미>가 표지로, 또 <다알리아> 컬러 도판이 두쪽에 걸쳐 크게 소개된 것이 주요한 계기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1980년대 초반 <장미>와 <다알리아>를 구매한 이래로 2000년대 초반 이인성의 최고 걸작 <경주의 산곡에서>까지 30점 가까운 이인성 수작들을 수중에 넣었다. <장미>는 자신의 사무실에 걸어두고 상시 관람할 정도로 좋아했고, <다알리아>는 이번에 기증된 것 외에 다른 수작 한점도 따로 수집했다.
이번 특별전에 <다알리아>가 전시되면서 흥미로운 논란도 생겨났다. 학계 일각에선 하단부 알파벳 서명 글자를 이인성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심층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화폭 맨 아래 있는 서명은 수수께끼다. 알파벳으로 쓴 것은 분명하지만 물감이 부슬부슬하게 떨어져 나가는 등 화면 상태가 좋지 않아 맨눈으로 정확한 자체를 판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인성은 생전 50종 넘는 다양한 서명을 그림에 남겼고, 서명하지 않은 그림들도 많다. 이미 거래 과정에서나 2012년 이인성 탄생 100주년 특별전 당시 전문가들이 진품으로 감정해, 결정적인 새 단서가 없는 한 진위를 둘러싼 이론은 제기되기 힘들 것으로 보이지만, <다알리아> 서명의 원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를 둘러싼 궁금증은 이 작품의 운명에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미술관 쪽은 전시 뒤 곧바로 엑스레이 투과 등 정밀한 과학 분석 조사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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