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산을 오르는 이유

장보영, ‘아무튼, 산’ 저자, 트레일 러너 2021. 11. 30. 03: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

“다시는 절대 안 해, 내가 하나 봐라!” 온종일 산을 걷거나 달린 사람들이 하산 길에 흔히 하는 푸념이다. “등산? 힘든데 그걸 왜 해?” 주변 친구들에게 산에 가자고 했을 때 으레 돌아오는 이러한 질문도 이제 그리 낯설지 않다. 덥거나 춥고, 지치고 힘들고 괴로운 등산을 도대체 왜 하는 걸까?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말로리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너무나 멋진 존재론적 명언이다. 그런데 솔직히 산이 그곳에 있는 것과 내가 산을 오르는 것이 대관절 무슨 상관인지는 잘 모르겠다.

말로리의 말을 패러디하자면, 내가 산을 오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생에 고통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산이어도 삶에 비할까. 굳이 생로병사를 꼽지 않더라도 희대의 전염병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아파하며 죽어갔고, 지구의 수명이 멀지 않았다는 기후변화 보고서가 연일 발표된다. 비현실적인 아파트값을 생각하면 내 집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갖지 못할 것이다. 지구는, 세계는, 인간은, 우리는, 그리고 나는? 나는 어떻게 되어가는 걸까? 불안하고 두렵다.

이러한 삶을 뒤로하고 산을 오를 때, 나는 고통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지게 된다. 발끝의 자갈, 나무, 낙엽 등을 살피며 서서히 고도를 올리면, 그러다 하늘 한 번 쳐다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면, 내가 무엇을 하는지, 지금 이 순간은 어떤 건지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감각은 너무도 날카로워서 다시 마주한 고통의 숨을 죽인다. 무엇이든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깐부 할아버지’ 일남도 말하지 않았나.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수가 없지.” 시선을 두는 곳마다 산이 있는데 이 산을 보기만 하는 건 좀 아쉽지 않을까.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