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지옥’은 넷플릭스에만 있는가
좌표 찍어 공격하는 광신도들
“진리”라며 거짓 퍼뜨리는 사제
다른 말 하면 처벌한다는 선동
연상호 감독의 6부작 ‘지옥’을 본 넷플릭스 이용자들의 반응은 상당히 직접적이다. 한 시청자는 대놓고 ‘시장 상인 개인 신상 털고 몰려가 욕지거리하던 거 생각난다’고 트위터에 썼다. 작년 초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경기가) 거지 같아요”라고 했다가 가게 상호명과 주소, 전화번호가 노출되고 인신공격에 불매운동까지 당했던 한 재래시장 상인을 떠올린 것이다. 극 중 ‘화살촉’이란 광신도 단체가 소셜미디어에 이른바 ‘죄인’들 신상을 공개하고 찾아다니며 단죄하는 모습에서 유사성을 본 듯하다. 이런 반응을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독자(관객)의 역할을 중시하는 현대의 수용이론에선 독자의 참여를 통해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 것으로 본다.
‘지옥’은 암시와 비유로 가득 차 있다. 죄인이 지옥에 갈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는 ‘고지’, 괴물들이 나타나 멀쩡한 사람을 죽이고 이를 중계하는 ‘시연’, 사람들에게 이 초(超)자연적 현상이 “신(神)의 의도”라며 해석을 독점하는 사제(司祭)들이 등장한다. 표면적으로는 사이비 종교를 비판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은 훨씬 다양하고 중층적이다.
전 국민에게 생중계됐다는 점에서 작품 속 ‘시연’은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7년 반 전 우리는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을 태운 여객선이 침몰하는 장면을 전 국민이 지켜보면서도, 꽃 같은 아이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과적과 조작 미숙’이라는, 전(前) 정부에서 나온 침몰 원인 조사 결과는 배척당했다. 이 끔찍한 참사에 누군가의 의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선박 충돌설, 잠수함 충돌설, 암초설, 고의 침몰설을 비롯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해석들마저 쏟아졌다. ‘그날, 바다’ ‘유령선’ 같은 영화까지 제작한 김어준은 아예 세월호 주위에 신전(神殿)을 짓고 사제 역할을 자처한 인물이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원인은 문재인 정부에서 만든 선체조사위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뒤를 이어 등장한 사회적 참사 조사위도 활동 기간을 연장했다. 이런 가운데 공영방송 KBS는 또다시 외부 충격 때문에 급히 항로를 바꿨을 가능성이 담겼다는 주장을 뉴스로 전했다. 무책임한 일이다.
세월호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한 바다 밑에서 벌어진 일에 유난히 집착했다. 2010년 북(北)의 습격을 받은 천안함은 지금도 ‘잠수함 충돌설’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국방부가 잠수함 충돌을 제기한 유튜브에 대해 삭제 및 접속 차단 조치를 요구했지만, 이번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사제’들이 나서서 ‘그냥 둬도 된다’고 판단했다.
‘부산행’과 ‘반도’ 라는 좀비 영화를 만든 애니메이터 출신의 40대 감독은 어떻게 이런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그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그는 혼자 십년 넘게 줄곧 이런 이야기를 해오고 있었다. 예컨대 애니메이션 ‘사이비’(2013년)에서 그는 거짓을 말하는 착한 사람과 진실을 말하는 나쁜 사람을 대립시켜 우리 사회를 풍자하고 있었다.
‘지옥’의 사제들은 극이 종반부로 갈수록 자신들의 허구성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한다. 이윽고 드라마는 거짓을 선동한 사제들의 실체를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러나 현실은 답답하다. 세월호부터 5·18 특별법까지 진실과 거짓은 연일 거리에서 서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놓고 다투고 있다. 여기에 진영 논리까지 끼어들었다. 여당의 대선 후보가 만들겠다는 ‘역사 왜곡 처벌법’은 이제 수많은 사건에 대해 자신들의 ‘의도’에 어긋나는 다른 해석을 불허할 것이다. ‘헬조선’이란 말은 문재인 정부 들어 사라졌다지만, 어디가 더 지옥 같은지 누군가 묻는다면 솔직히 답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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