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말을 칼로 만들어준 더불어민주당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2021. 11. 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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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반대론자들은 혐오세력인 듯 매도당해온 기분이 드는데요 저는.” 토론회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이유를 또랑또랑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이 대목에서 살짝 흐트러졌다. 불쾌했거나, 억울했거나, 어쨌든 혐오를 지적당해온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그래서 반동성애 집단은 혐오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주장해 왔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나는 언젠가부터 혐오라는 말을 쓰는 것을 꺼려왔다. ‘혐오가 문제’라는 말이 쉬운 만큼 ‘혐오의 문제’에 대한 이해는 낮아졌기 때문이다. 지목당한 사람은 발끈하고 구경하는 사람은 눈만 끔뻑거린다.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의견을 말하지도 못하냐’ 같은 대화가 헛돈다. <말이 칼이 될 때>와 같은 친절한 책이 있지만 사람들은 ‘칼이 되는 말’을 가려내는 데 더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혐오는 말이 향하는 자리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의 2017년 조사에서 성소수자의 84.7%, 장애인의 70.5%, 여성의 63.9%가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비난하는 말들은 실재한다. 그러나 말이 두려움을 낳지는 않는다. 시작은 ‘칼이 되는 말’일지 몰라도 혐오를 완성시키는 것은 말을 칼로 만들어주는 사회다. 아무도 방패가 되어주지 않을 때 말은 칼이 되어 꽂힌다. 비난이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않고 현실에서 불리한 대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말은 말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혐오에 일찌감치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혐오의 문제는 이해하지 못한 채 혐오표현 규제 논의만 반복했다. 2013년에는 ‘일간베스트’ 게시판 폐쇄 조치를 검토했다. 20대 국회에서는 김부겸 의원이 혐오표현규제법안을 대표발의했다. 2019년에는 ‘혐오와 차별 문제 해소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해찬 당시 대표는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잘 이겨서 극우로 치닫는 차별과 혐오를 깔끔히 처리”하자고 독려했다. 그러나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혐오와 차별 해소에 기여했다는 소식은커녕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지난 25일 더불어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공론화하겠다며 토론회를 열었다. 그런데 반대측 토론자 모두 성소수자가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없다고 주장해온 인물이었다. 칼이 되는 말들을 불러모아놓고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찬반 양측이 서로의 입장을 조금 더 이해하고 접점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심지어 “양측 모두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 수호를 위한 견해”라고 추켜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은 2007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도해온 정당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줬을 것이다. 반대에 부딪혀 좌절한 경험들로 생긴 부담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차별 해소에 조금이라도 도움 될 방법을 찾느라 시간을 썼다면 기다림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제 분명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로부터 누구도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무너뜨려왔을 뿐이다.

당신들에게는 추상적 원칙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구체적 삶과 시간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는 모든 지워지는 존재들이 서로의 방패가 되겠다는 약속이었다. 칼이 되는 말들에 때로는 항의하고 때로는 설득하면서 방패가 되는 말들을 함께 만들어왔다. 그런데 민주당은 말을 칼로 만들어주기를 반복하고 있다. 첫 법안에서는 ‘성적 지향’을 삭제하고 두 번째 법안은 철회하고 세 번째 법안은 접점을 찾으란다. 존재를 지우고 권리를 철회시키더니 이제 방패도 내려놓고 칼을 맞으라는 건가.

“성소수자에게 사과하십시오!” 국가인권위원회 2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외친 이종걸 활동가의 요구를 더불어민주당에 그대로 전한다. 말이 칼이 되지 않고 말일 뿐이게 할 방법도 알려준다.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지금 당장 제정하라!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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