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의 알고 싶은 정치]'착한 정치'를 넘어서야 할 이유
[경향신문]
‘착한 정치’는 소용없다. 이는 사람들이 애써 알고 싶어 하지 않는 혹은 부정하고 싶어 하는 정치의 대표적 속성이다. 이 속성은 사람들이 정치를 나쁘고 부정적인 것으로 보게 만들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의도적 무지를 낳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래의 정치, 특히 이를 주도해야만 하는 청년을 비롯한 새로운 정치주체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정치의 불편한 진실이다.
착한 정치가 소용없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권력정치 옹호론’을 떠올릴지 모른다.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기 위해 정복과 전쟁과 독재와 공작마저 불사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추악한 정치를 정당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게 꼭 아니라고 해도 문제투성이인 정치를 고치지 않고 그냥 용인하자는 순응적 혹은 패배적 언사로 간주할 수 있다. 맞다. 착한 정치가 소용없다는 말은 분명 그런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의혹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착한 정치의 소용없음에 대한 인식과 인정은 ‘다른’ 정치를 향한 도정의 끝과 포기가 아니라 시작과 도전이다.
착한 정치란 무엇인가? 권력의 차지와 유지보다는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적 삶과 행복 그리고 공동체의 발전을 중시하겠다고 표방하는 정치로 규정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지위와 득표보다는 약자를 포함한 다수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정책을 우선 추구하겠다는 선의를 내세운 정치다. 그래서 승패와 다툼과 독단이 아닌 힘의 균형과 조화와 합의를 행동 양식으로 삼겠다는 정치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착한 정치를 지향하고 실현하겠다고 한다. 적어도 시도는 하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그런데도 착한 정치가 소용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 말이다.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말은 “앞으로는 이룰 수 있다는 혹은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단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기성 정치를 비판하며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이들의 뇌리와 가슴에 새겨져 있는 희망과 의지의 언사로 실제 표출되기도 한다. 착한 정치를 지향하며 그러한 언사를 구사하는 이들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의 소중함을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이들의 존재와 활동으로 인해 정치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정치가 더 나쁘게 망가지는 것을 막아내는 힘일 수도 있다.
왜 착한 정치는 소수이고 나약할까
착한 정치의 소용없음에 대한 인식과 인정은
‘다른’ 정치를 향한 도정의 끝과 포기가 아니라 시작과 도전이다
따라서 해결 과제를 착함과 올바름의 입증이 아니라
국민들의 선호에 응답하는 데서 찾고 자신이 전제한 가정들의 유효성을 물어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착한 정치가 소용없다는 언명은 바로 여기서 등장한다. 착한 정치에 반대하는 이들도 없고 그것을 지향하는 이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음을 던져야 한다. 왜 착한 정치는 아직 오지 않고 있는가? 거짓으로 착한 정치를 표방하는 이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반면에 진실로 추구하는 이들은 소수이고 힘이 약해서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물음이 남는다. 왜 아직도 진짜 착한 정치 세력은 소수이고 힘이 약한가?
이러한 물음들과 관련해 필자가 주목하는 건 인간과 정치의 복합성과 복잡성이다. 무엇인가 옳고 맞고 좋다고 여겨지는 것 그 자체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성질의 삶과 세계. 오히려 옳고 맞고 좋다 여겨지는 것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고립되어 힘을 상실하는 질서와 그것의 작동 원리다. 복합적이고 복잡해서 고도의 지능을 보유한 전문가들만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더 잘 터득한 이치다. 정치를 비롯해 세상사를 착함과 나쁨으로 구분하기 어렵고, 착한 일이든 나쁜 일이든 뭔가 이루려면 똑똑함과 영리함보다 현명함과 지혜가 필요하다는 깨달음 말이다. 또 상황에 따라 선의를 숨기거나 악의와 연결지어 변형시키기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자각 말이다.
노예 해방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착한 정치의 역사적 표본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노예 해방을 실제 달성케 한 것은 선의 그 자체에 대한 공감과 인정이 아니었다. 영국에서도 그랬고 미국에서도 그랬다. 영국에서의 노예 해방은 그 의도를 숨긴 채 애국심을 앞세워 가능해졌다. 노예 해방론자들은 영국과 전쟁 중인 프랑스와 그 동맹국 선박들이 중립국인 미국 국기를 달고 물자를 운송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미국 국기를 단 선박에 대해서도 사나포선의 수색과 압류를 허용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영국의 노예무역선도 80% 이상이 미국 국기를 달고 항해한다는 것, 그리고 사실상 해적들인 영국의 사나포선이 프랑스 선박이든 영국 선박이든 가리지 않고 공격해 운송 물자를 강탈할 것이라는 데에 착안한 것이었다. 노예무역업자들이 수익을 얻을 수 없도록 해 노예제 폐지에 반대할 유인을 약화 혹은 제거한 것이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예 해방은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를 위해 흑인을 병력으로 흡수하는 과정을 거쳐, 더 나아가서는 산업자본주의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노동력 확보와 남부의 농업자본주의 해체 전략과 연결됨으로써 가능했다. 선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사회세력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정세에 부합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이겠으나 인간의 형상을 했다고 다 같은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인종과 성별과 계급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다. 노동약자의 생명과 안전 문제,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을 둘러싸고 여전히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민주공화국에서는 그런 차별적 관점과 생각은 물론이고 그것을 표출한 행동마저도 다수의 동의와 법적 제도를 거치지 않고서는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그런 동의와 법적 제도의 도입 자체가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즉 약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민과 같은 착함만으로는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론의 조성과 동원을 통해 그런 관점과 생각과 행동을 비난하고 곤란하게 만들어 당장 혹은 잠시 동안 눈앞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반복해서 확인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러한 관점과 생각과 행동은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약자 고통은 착함만으로 해결 못해
착함을 내세운 그 어떤 비판도 소용이 없는 때 필요한 건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선택지 제시다.
지금의 정치가 착함을 넘어 가닿아야 할 곳이다
젊은 정당 및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들을 만나면 무기력함을 느낀다며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중요한 의제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조사해 보았더니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 서민 주거 문제 해결, 고용 및 소득 불안정 해소와 노동약자 보호 등으로 모두 자신들이 우선순위로 설정한 문제가 나왔다 한다. 예의 하소연이 여기서 다시 시작된다. 왜 그런 문제의 해결을 앞장서 촉구하는 자신들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미약한지 답답하다면서. 그들 나름의 답은 양대 정당에 유리한 선거제도와 편 가르기, 상대방에 대한 흠집 내기가 주를 이루는 양당의 경쟁 전략, 이를 위주로 한 언론 보도 그리고 실제 수행 의지도 없으면서 레토릭 차원에서나마 모두 다 하겠다고 나선 양대 정당의 의제 수용 등이다. 자신들 의제의 고유성을 인정받을 기회가 봉쇄된 환경 탓이라는 것이다. 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 민심의 평가 대상인 정치주체인지라 환경을 탓해봐야 소용없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이 ‘관점’이다. 방법은 정치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기존과 다른 물음을 던질 때 찾을 수 있다. 뒤집어도 봐야 하고 거꾸로도 봐야 한다.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환경의 역설적 긍정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상황 추이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것과 내줄 수 있는 것이 뭔지 ‘거래 항목의 조합’도 미리 미리 여러 개 만들어 운용해야 한다. 의제의 우선순위 조정도 필요하고 문제 해결의 우회 경로도 찾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착함과 올바름의 입증이 아니라 국민들의 선호에 응답하는 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쉬면서 때를 기다리기도 해야 한다. 다만 깊은 물음을 던져야 한다. 특히 자신이 전제하고 있는 가정들이 지금도 앞으로도 유효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 그리하는 게 바로 ‘반성 혹은 성찰’이다. 착함과 올바름에만 매달리면 그런 물음이 없어진다. 방법을 찾기보다 관철되지 않는 현실을 문제 삼으며 원칙을 한층 더 목소리 높여 반복해 주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표 매수가 심했던 시절의 영국 정치 이야기다. 정치 신인으로 선거자금이 쪼들리는 한 출마자가 신망받는 목사님에게 부탁을 했다. 설교 때 “돈 받고 찍어주는 건 죄악이라 지옥에 갈 거다”라고 말해 달라고. 주일이 지나 출마자가 그 지역 유권자를 만나 설교에 대한 반응이 어땠는지 물었다. 유권자가 답했다. “사람들이 지옥에 갈까봐 무서워했다”고. “그래서 표값이 2배로 올랐다”고. 사람들은 지옥에 간다 해도 죄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착함을 내세운 그 어떤 비판도 소용이 없는 때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선택지의 제시다. 지금의 정치가 착함을 넘어 가닿아야 할 곳이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 및 실천교육센터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세계와 시민’ ‘정치의 인문학적 탐색’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 ‘시민과 세계’ 편집위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 노회찬정치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정당> <헬조선 3년상> 등의 저서와 ‘노동존중 정치와 노회찬의 6411정신’ ‘한국 불평등 민주주의의 정치사적 기원’ 등의 논문이 있다.
김윤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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