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인터넷의 재현

이융희 문화연구자 2021. 11. 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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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징어 게임>에서 <지옥>까지. 넷플릭스를 통한 한국 드라마의 선전은 놀라울 정도이다. 유튜브를 탐험하다 보면 <오징어 게임>의 파급력을 보다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다. 기존에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해외에서 이슈가 되면 외국인들이 영상을 청취하고 반응하는 리액션 영상 정도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과 관련된 영상들은 작중에 나온 한국 전통의 놀이를 체험해보는 영상들부터 ‘형’ ‘사장님’ 등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함의가 담긴 대사가 어떤 의미인지 해설해주는 영상까지, 외국인들로 하여금 <오징어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넘어 한국 문화에도 집중하게 함을 보여준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최근 SNS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보았다. 보스턴 고등학교의 화학교사인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내주었는데 학생들이 이름을 모두 한글로 써서 제출했다고 한다. 삐뚤빼뚤하게 ‘제이든’이라고 쓴 글씨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전해져온다. 글쓴이는 이러한 현상을 “<오징어 게임> 때문이 아닌 BTS 때문”이라고 했다. 이 짧은 문장 하나가 한국 콘텐츠 시장의 성공과 그 파급력을 얼마나 잘 보여주는가.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것부터 BTS가 매일 써내려가는 기록들까지. 2020년 전후 콘텐츠 시장의 약진과 성과는 그야말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단순히 ‘콘텐츠’의 성공이 아니라 콘텐츠가 재현하고 있는 한국 그 자체의 형상과 이미지, 그리고 그 파급력에 대해 다시금 되새겨보아야 한다. 외국인들이 콘텐츠로 바라보는 건 그저 만들어진 가상의 콘텐츠 정도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 자체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상호, 최규석 두 사람의 힘으로 만든 <지옥>은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보면서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있었다. 바로 ‘화살촉’ 캐릭터가 등장하는 인터넷방송 장면이었다. 영상에서 그가 등장할 때마다 나는 마치 작품 바깥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몰입을 방해한 것은 한 번도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본 적 없는 제작자가 만든 온라인 방송의 채팅 때문이었다. 버퍼링도 없고 현대적 밈도 없고 비아냥도 없고 시니컬함도 없이 오로지 ‘깔끔함’과 ‘매끄러움’으로 다듬어진 채팅 장면은 오히려 이 장면이 지독한 허구에 불과하다는 걸 상기시킨다.

이 장면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제작자 또는 제작사가 갖고 있는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에 대한 공포와 적대감, 그리고 분노에 불과하다. <지옥>은 윤리적인 질문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던지기 위해 세계의 개연적 조형에 힘썼다. 하지만 메타버스의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가장 디지털적으로 고도화된 시대에 인터넷 문화의 재현을 외면하는 그 풍경은 한순간에 드라마의 성질을 낡게 만든다. 과연 이 드라마는 ‘한국’을 제대로 조망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오히려 낡은 한국의 성질에 고착된 채 그 너머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지옥>은 잘 만든 드라마인 동시에 웹툰과 OTT 플랫폼이라는 최신 기술을 잘 활용한 콘텐츠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만든 콘텐츠에서 인터넷 문화의 재현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아이러니는 창작자가 ‘지금, 여기’ 문화에 대해 보다 더 집중해 줬다면 하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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