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인터넷의 재현
[경향신문]
<오징어 게임>에서 <지옥>까지. 넷플릭스를 통한 한국 드라마의 선전은 놀라울 정도이다. 유튜브를 탐험하다 보면 <오징어 게임>의 파급력을 보다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다. 기존에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해외에서 이슈가 되면 외국인들이 영상을 청취하고 반응하는 리액션 영상 정도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과 관련된 영상들은 작중에 나온 한국 전통의 놀이를 체험해보는 영상들부터 ‘형’ ‘사장님’ 등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함의가 담긴 대사가 어떤 의미인지 해설해주는 영상까지, 외국인들로 하여금 <오징어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넘어 한국 문화에도 집중하게 함을 보여준다.
최근 SNS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보았다. 보스턴 고등학교의 화학교사인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내주었는데 학생들이 이름을 모두 한글로 써서 제출했다고 한다. 삐뚤빼뚤하게 ‘제이든’이라고 쓴 글씨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전해져온다. 글쓴이는 이러한 현상을 “<오징어 게임> 때문이 아닌 BTS 때문”이라고 했다. 이 짧은 문장 하나가 한국 콘텐츠 시장의 성공과 그 파급력을 얼마나 잘 보여주는가.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것부터 BTS가 매일 써내려가는 기록들까지. 2020년 전후 콘텐츠 시장의 약진과 성과는 그야말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니 우리는 단순히 ‘콘텐츠’의 성공이 아니라 콘텐츠가 재현하고 있는 한국 그 자체의 형상과 이미지, 그리고 그 파급력에 대해 다시금 되새겨보아야 한다. 외국인들이 콘텐츠로 바라보는 건 그저 만들어진 가상의 콘텐츠 정도가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 자체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상호, 최규석 두 사람의 힘으로 만든 <지옥>은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보면서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있었다. 바로 ‘화살촉’ 캐릭터가 등장하는 인터넷방송 장면이었다. 영상에서 그가 등장할 때마다 나는 마치 작품 바깥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몰입을 방해한 것은 한 번도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본 적 없는 제작자가 만든 온라인 방송의 채팅 때문이었다. 버퍼링도 없고 현대적 밈도 없고 비아냥도 없고 시니컬함도 없이 오로지 ‘깔끔함’과 ‘매끄러움’으로 다듬어진 채팅 장면은 오히려 이 장면이 지독한 허구에 불과하다는 걸 상기시킨다.
이 장면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제작자 또는 제작사가 갖고 있는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에 대한 공포와 적대감, 그리고 분노에 불과하다. <지옥>은 윤리적인 질문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던지기 위해 세계의 개연적 조형에 힘썼다. 하지만 메타버스의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가장 디지털적으로 고도화된 시대에 인터넷 문화의 재현을 외면하는 그 풍경은 한순간에 드라마의 성질을 낡게 만든다. 과연 이 드라마는 ‘한국’을 제대로 조망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오히려 낡은 한국의 성질에 고착된 채 그 너머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지옥>은 잘 만든 드라마인 동시에 웹툰과 OTT 플랫폼이라는 최신 기술을 잘 활용한 콘텐츠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만든 콘텐츠에서 인터넷 문화의 재현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아이러니는 창작자가 ‘지금, 여기’ 문화에 대해 보다 더 집중해 줬다면 하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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