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워킹맘 고충 잊지 않은 이재용의 주문 "경력 단절 없애라"
이재용식 인사 혁신…30대 임원·40대 CEO 나오나
[더팩트 | 서재근 기자] 삼성전자가 연말 정기 인사를 앞두고 대대적인 인사제도 개편안을 내놨다. 지난 2016년 6월 창의·수평적 조직문화 조성에 초점을 맞춘 '손보기'에 이어 6년 만이다.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를 꾀한 삼성전자의 실험을 두고 재계에서는 혁신을 강조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29일 삼성전자는 △승격제도 △양성제도 △평가제도를 골자로 한 '미래지향 인사제도' 혁신안을 발표했다. (2021년 11월 29일 자 <삼성전자, 인사제도 '대수술'···승진 기한 없애고, 절대평가 도입> 기사 내용 참조)
최종 인사제도 개편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부터 변화는 뚜렷했다. 삼성전자는 임직원 온라인 대토론회 및 계층별 의견청취 등을 거쳐 개편 방향을 정하고, 노사협의회·노동조합 및 각 조직의 부서장과 조직문화 담당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의견을 청취해 세부 운영방안을 수립했다.
이번 삼성전자의 인사 개편안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연공서열 타파'다. 기존 '직급별 표준 체류기간'을 폐지하고, 성과와 전문성을 다각도로 검증하는 '승격세션'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다시 말해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는 데까지 n년', '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하는 데 n년'과 같은 연공서열식 승진 공식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2016년 인사제도 개편 당시 직급 단계를 7단계(사원1·2·3, 대리, 과장, 차장, 부장)에서 4단계(CL1~CL4)로 단순화한 바 있다. CL1은 고졸과 전문대졸 사원, CL2는 대졸 사원, CL3과 CL4는 각각 과장·차장급, 부장급이 차지한다. 당시에도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실험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삼성전자는 또 한 번 변화를 꾀했다. 벌써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의 '30대 임원' 또는 '40대 최고경영자(CEO)'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이 같은 변화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국내외 행보에서 '뉴삼성'으로의 전환을 향한 의지를 거듭 드러내왔다. 지난 10월 고(故) 이건희 회장 1주기 당시에는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고 당부했고, 최근 미국 출장 중에도 DS미주총괄(DSA)과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를 방문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 새로운 삼성을 함께 만들어갑시다"라며 '새로운 삼성' 구축을 재차 강조한 바 있다.
연공서열을 없앤 것 외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바로 사내 '워킹맘'에 초점을 맞춘 별도 인사프로그램을 신설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육아휴직으로 인한 여성 임직원들의 경력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육아휴직 리보딩 프로그램'을 마련, 출산 후 복직 시 연착륙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변화의 시발점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재용 부회장은 당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찾아 사내 워킹맘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코로나19 여파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 등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어려움이 커진 워킹맘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련된 소통의 자리였다.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는 여성 임직원들의 고충과 더불어 일과 삶의 균형, 남성 임직원들의 육아 분담 활성화, 여성 리더십 계발 방안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 이재용 부회장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기존의 잘못된 관행은 물론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을 바꾸고 잘못된 것, 미흡한 것, 부족한 것을 과감하게 고치자"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면서 유능한 여성 인재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차세대 리더로 성장하고,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조직문화를 조성하는 데 힘쓰겠다고 공언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주요 거점에 공유 오피스를 설치하는 방안이 포함된 'Work From Anywhere 정책'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는 일찍이 '자율 출근제'를 도입해 일률적인 출퇴근 시간 적용에서 벗어나 임직원들이 육아와 같은 개인 사정과 시간 활용 계획에 따라 업무 집중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하고, 2012년에는 이를 확대해 '자율 출퇴근제'로 확대 운영했다.
2018년에는 출퇴근 시간과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도록 월 단위로 확대한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해 직원들이 보다 자율적이고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는데, 3년여 만에 '공유 오피스 설치'로 진화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뉴 삼성'으로의 변화를 강조한 이재용 부회장의 의중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결과"라며 "대규모 투자와 고용, 인사제도 및 조직 운영 등 삼성의 결정과 결단은 늘 재계의 기준점이 돼왔던 만큼 연공서열을 과감하게 깬 '미래지향적 조직문화'가 다른 기업들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ikehyo85@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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