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백의자유롭게세상보기] 언제까지 개천의 용인가
계층 유지·이동 수단으로 접근
명문대학 출신이 성공은 옛말
시대변화에 맞게 프레임 깨야
자원이 부족하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역사도 짧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원동력 가운데 배움에 대한 국민의 열정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학교 들어가면 지금보다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이 모여 위기를 극복하고 국력을 높였다. 그렇기에 대학입시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피하기 힘든 인생의 큰 행사이자 고비다. 오죽하면 수능시험 날엔 출퇴근 시간이 조정되고, 영어 듣기평가 시간엔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되지 않는가.
두 번째, 우리 국민은 교육에 관심을 가졌지만, 국가는 오랫동안 고등교육이 하향 평준화되도록 내버려 두었기에 역설적으로 명문대학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지게 됐다. 전체 교육예산 가운데 2021년 기준으로 14.5%만 고등교육예산에 배정될 정도로 고등교육은 국가의 우선순위에서 뒤처져 있다. 그러다 보니 세계 대학평가에서 우리나라 대학들은 점차 뒤처지고 있으며, 우물 안 개구리 식 경쟁에 몰린 상황이다. 대학의 전반적인 경쟁력이 낮은 상황에서 우월한 교육연구 환경과 동문 네트워크를 갖춘 일부 명문대에 대한 열망은 커질 수밖에 없었기에 대한민국의 부모와 자녀들은 입시전쟁의 전사가 됐다.
다행히도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기억과 경험이 축적되며 대학이 자아 형성에 미치는 계층적 효과는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 철옹성 같던 대학 간 서열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으며, 대학의 이름에만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역량과 미래 사회의 변화를 고민하며 고등교육을 바라보는 긍정적 움직임도 발견되고 있다. 또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며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 투자가 늘어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이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아 대학입시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폐해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여전히 고등교육에 대한 논의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개천용’ 프레임이다. 최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발표한 ‘대학입학 성과에 나타난 교육기회 불평등과 대입 전형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가구환경 간 대학입학 성과의 기회 불평등은 존재하며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또한, 성별 간, 지역 간 대학입시의 기회 불평등 역시 여전히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 연구는 현재의 대학입시 제도로는 기회 불평등을 줄이기 어렵다는 어두운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이렇게 대학입학을 기회 불평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개천용 프레임은 타당한 면도 있지만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두 가지 문제점이 존재한다. 첫째, 대학교육의 의미를 계층 유지와 이동 수단으로만 바라본다는 점이다. 대학과 계층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하지만 지식의 범위가 확대되고 이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채널이 다양화함에 따라 대학 입학이 한 사람에 좌우하는 경우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다. 즉 대학은 계층 형성의 기제에서 점차 그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개천용 프레임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역행하며 여전히 대학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시각을 견지한다.
또한, 개천용 프레임은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지위를 얻는다는 기본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기존의 명문 대학과 비명문 대학의 차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어폐가 있다. 설령 가정 배경에 따라 입학하는 대학이 다르더라도 어떤 대학에서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입학 기회는 불평등할지언정 교육 결과의 불평등은 감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개천용 프레임은 향후 명문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의 차이를 줄이려는 필요성을 감출 수 있어 고등교육 전반의 수준을 높여야 하는 미래 목표와 상반되는 프레임을 재생산하는 문제점을 가진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사회·문화·역사적 요인이 결합한 총체적 결과이다. 따라서 대학을 계층 사다리와 기회 불평등 관점에서 바라보면 교육의 본질과 역할의 변화를 간과하고 교육을 단순히 도구의 관점에서 접근할 우려가 있다. 우리가 고등교육을 통해 얼마나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의 관점으로 대학입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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