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당정치 실현, 정책 선거의 요건이다
[경향신문]
대선은 우리 사회 모든 현안 해결책을 들고 시민들의 선택을 받는 과정이다. 그런데 대선을 100일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 국가를 이끌어갈 비전과 정책 경쟁은 보이지 않는다.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들은 포퓰리즘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역대 어떤 대선보다도 정책의 빈곤이 도드라진다. 비생산적 정치와 결별하는 대선이 되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정치개혁이 대선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는 명분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
한국 정치의 문제점은 정당정치의 실패와 직결된다. 가장 폐해가 큰 정당 간 극한 갈등 구조는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거대 정당 후보 간 대결은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는 금언을 무색하게 한다. 4·15 총선 이후 지속돼온 180석의 여권과 100석의 제1야당 간 극한의 힘 겨루기가 대선에서도 이어지는 것이다. 거기에 이념·지역·세대·빈부·남녀 간 갈등까지 중첩되면서 갈등은 한층 더 증폭되고 있다. 경쟁은 하되 투쟁은 지양하라는 민주주의 선거 원칙에서 한참 일탈하고 있다.
여야 갈등 구조는 대선 이후 정치 지형에까지 드리운다. 차기 대통령은 첫 2년을 21대 국회와 함께 보내게 돼 있다. 민주당이 재집권하면 새 대통령과 180석 의석의 결합체가 된다. 정치사상 유례가 없는 체제이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정권교체를 이룬다면 새 대통령 권력과 180석 범야권이 극한 투쟁을 하는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여당의 국정독주나 여야 간 극한 대결을 피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당정치를 가로막는 중요한 요소는 역시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이다. 헌법은 입법·사법·행정 3권의 분립을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행정을 대표하는 청와대 권력이 입법은 물론 모든 분야를 틀어쥐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여당의 논의를 좌지우지하면서 야당과 극한 대립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촛불정권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 역시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다. 대선 때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개헌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번 대선의 핵심 과제는 정상적인 ‘당·정·청’ 관계를 만들 대통령을 뽑는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국회와 청와대, 그리고 행정부가 제자리에서 유기적으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청와대의 무한 권력이 아닌 정책 리더십으로 행정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대통령, 정당정치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게 하는 대통령, 야당을 설득하고 존중할 수 있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정치 실현에 가장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 내부 쇄신이다. 현재 국내 정당은 아래로부터 의견을 모아 당론을 형성하는 과정은 고사하고 시민들과 유리되어 있다. 정당정치를 탄탄하게 실행하려면 진성 당원 확보를 통해 당내 민주주의부터 구현해야 한다. 공천 제도를 혁신해 당원이 중심이 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시민들의 요구를 정책으로 만들어 시행하고, 다시 그 결과를 피드백으로 보완하는 온전한 과정만이 정당정치를 완성할 수 있다. 당의 리더십과 주요 후보자의 충원 시스템도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국회의원 경력이 전무한 30대가 대표로 선출된 것은 변화에 대한 욕구이기도 하지만 기존 정치의 실패이다. 여의도 정치를 전혀 경험하지 않은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여야 대선 후보로 선출된 것도 마찬가지다. 위아래로 탄탄한 정당정치를 구현하고자 하면 이런 과제부터 해소해야 한다. 정당 내부에서 시작된 변화의 물줄기가 정치개혁이라는 큰 강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이번 대선은 그 물꼬를 터야 한다.
정당정치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과제도 산적하다.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피선거권 연령 조정 등을 여야 합의로 처리할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21대 국회의원 선거판을 왜곡한 위성정당 꼼수에 대해서는 여야가 바로잡을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24년 총선 때까지 개혁을 미루다 또다시 꼼수를 쓸 심산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차근차근 선거제도를 정비해 나가야 한다. 유권자들의 투표 가치가 그대로 실현되도록 표의 비례성을 바로잡는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본래 취지에 맞게 보완함으로써 사표를 줄이면서 다양한 소수의 목소리도 골고루 담아내는 제도를 안착시켜야 한다. 여성·청년 후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지방의회에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4인 선거구제도 활성화해야 한다. 결선제를 도입해 유권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여야 협치는 정당정치의 필수요소다. 그런데 사회 갈등을 해소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회는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절충하는 협치의 장이 되어야 한다. 모든 갈등 사안은 국회 내에서 충분히 논의되어야 하며, 정당은 그 논의 결과에 따라 접점을 찾아내야 한다. 정치적 갈등을 사법부의 결정으로 해결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퇴행이다. 여야 협치를 위해서는 대통령의 결단과 여당의 양보가 전제돼야 한다. 대통령은 여당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통합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새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는 내년은 정당정치의 원년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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